[理知논술/독서로 논술잡기]‘취옹,풍경을 마시다’

  • 입력 2009년 4월 27일 02시 58분


◇‘취옹,풍경을 마시다’/왕희지 외 지음,서은숙 옮김/이룸

우리는 중국의 기행산문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확인한다. 즉, 인간이 자연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그곳에서 다양한 감정을 표출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이 있고, 인생과 사회에 대한 사유와 깨달음도 있다. 또한 자연에서 인간 내면의 불평등한 욕망과 분노를 읽고, 복숭아꽃 속에서 인간 세상의 이상향을 추구한 사람도 있다. 대표적인 작가가 왕희지, 도연명, 구양수, 소식 등이다. 이 책은 이들의 꿈을 진솔하게 다룬다. 이러한 내용을 논술과 관련시켜 논의해보자.

「(가) 복숭아꽃 숲이 끝나는 곳에서 물길은 다했다. 문득 산 하나가 시야로 들어왔다. 그것은 마치 가슴 가득 응어리를 안고서 말없이 천 년을 기다려온 것 같았다. 산기슭에 작은 동굴이 있었고, 그곳에서 빛이 희미하게 새 나왔다. 속세에 대한 그리움을 끝내 억제하지 못한 선녀처럼, 어부는 하루 종일 아무런 수확을 안겨주지 못한 배를 버리고 동굴 입구로 걸어 들어갔다. 동굴은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로 아주 좁았다. 수십 보를 걸었을까. 좁았던 동굴 안이 갑자기 밝아졌다. 그는 생각했다. ‘별유천지가 이런 곳에 숨어 있다니! 신선들이 사는 곳이 틀림없어!’ …중략…. 안개가 자욱한 언덕에는 고목과 시든 가지만이 있을 뿐 그때의 복숭아꽃의 분홍빛 길은 보이지 않았다. - 복숭아꽃, 그 분홍빛 얼굴(22, 23쪽)

(나) 돌아가리라! 오랫동안 방치한 논과 밭은 아제 잡초가 무성하다. 어찌 돌아가지 않는단 말인가. 정신은 자유롭고 양심적인 생활을 갈구하지만, 몸은 오히려 명분과 이익의 틈바구니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지내려고 한다. 유약한 정신은 보잘것없는 몸의 감옥에 갇혀 실의로 남몰래 흐느끼고, 숨이 끊어질 듯 고통스러워하고, 상처 자국만 가득하다. 이럴 필요가 있을까. 한 번뿐인 인생,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리라! 지나간 시간은 이미 바로잡을 방법이 없다. 오직 미래만을 다시 설계할 수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이 명백해진 지금이야말로 늦지 않았다.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지만 아직 그리 멀리 오지는 않았다. 이제 정신의 인도에 귀를 기울이고 방향을 바꿀 때이다. 이제야 알겠다, 버려야 한다는 것을. 나는 마음 가볍게 낙향의 길에 올랐다. - 화살처럼 달려가는 마음(30, 31쪽)」

무릉도원… 유토피아… 율도국… 동서양의 이상향

인간은 왜 ‘있을 수 없는 곳’을 늘 꿈꿔 왔을까

① ‘(가)의 무릉도원의 이상향에 나타난 의미를 밝히고, 그와 유사한 사례가 나온 작품을 들어 설명하시오’를 만들어보자.

이상향의 추구는 ‘전란’과 같이 삶의 시련을 느낄 때 사람들의 꿈을 강렬하게 지배했던 이상적 모델이다. 어느 국가, 사회든지 삶의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다. 도연명도 도화원이라는 유토피아적 이상세계를 통해 당시의 혼란스러운 시대상과 포악한 정치상을 비판했다. 그 이상향은 인간 본연의 심성으로 살아나가는 아름다운 곳으로 형상화됐다. 그와 유사한 사례로 토머스 모어가 쓴 ‘유토피아’가 있다. 이 책은 영국의 정치, 경제적 모순을 풍자하고 비판하기 위해 쓴 것이다. 유토피아는 화폐가 없기 때문에 금전적 범죄는 물론이고 싸움, 살인, 배신 도박도 사라진 이상향이다. 허균의 ‘홍길동전’ 속 율도국도 유토피아다. 율도국은 차별이나 탐관오리의 횡포가 없는 이상사회다.

② ‘(나)의 글에서 귀농의 의미를 밝히고, 그것이 현대인의 삶에 주는 교훈을 인간의 본성과 관련지어 제시하시오’를 만들어보자.

뜻있는 사람들은 몸은 관직에 있으면서 마음은 자연에 있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 선인의 문학 작품 가운데 자연을 노래한 풍류시가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도연명의 ‘귀거래사’도 마찬가지다. 귀농은 몸과 마음을 천지자연의 변화무상한 순리에 맡기고 자신은 무위자연을 즐기는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다. 책 서문의 ‘사람의 본성이 자연을 닮게 마련인지라 억지로 고칠 수 없다’의 내용도 같은 맥락이다. 현대인들은 생존 경쟁을 통해 이기적인 삶을 추구한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은 인간의 본성에 맞는 세계가 아니다. 자연과 하나가 되면서 사는 데서 오는 삶의 즐거움이 인간의 본성이다. 사람은 한가한 마음으로 자신의 내면과 만날 본성을 확인한다. 21세기의 화두가 ‘자연과 사람’인 이유다.

우리는 이 책에서 중국 역대 산문 중 뛰어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독자들은 작품 속에 묘사된 생생한 체험을 책 밖에서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이 책을 들고 ‘현실’과 ‘허구’라는 두 세계를 향해 여행을 떠나라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상상의 날갯짓에 따라 독자의 감동은 배가 된다.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묘미다.

이도희 송탄여고 국어교사, ‘스스로 논술학습법’ 저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