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말로만 배려” 학교선 “재원 부족”

  • 입력 2009년 4월 24일 03시 02분


국제중‘사회적 배려 입학생’절반만 교육비 전액 지원

올해 문을 연 영훈국제중학교는 최근 “내년 신입생 선발 때부터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을 없애는 대신 저소득층 장학생을 선발한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정원의 20%를 선발하기로 한 것은 지난해 서울시교육위원회가 국제중 설립을 승인한 주요 이유 중 하나였다. 제도를 시행한 지 채 한 학기도 지나기 전에 학교가 두 손을 든 셈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현재 영훈, 대원국제중은 사회적 배려 대상 선발 학생 32명 중 50%에게는 수업료, 급식비, 방과후 학교 참여비를 포함한 교육비 전액을 지원한다. 나머지 50%는 소득 수준에 따라 차상위 계층에게는 수업료 70%, 나머지는 50%를 보조해 주고 있다. 그 외 교육비는 모두 학부모가 부담해야 한다. 국제중은 수업료 이외에도 돈이 만만찮게 들어간다. 영훈국제중이 입학 전 개최한 오리엔테이션 캠프는 참가비만 80만 원에 달했다. 급식비와 교통비를 포함하면 100만 원이 넘는 금액. 여기에 개학 후 교재비만 20만 원이 넘었다. 방과 후 학교에 쓰이는 클래식 기타는 30만 원도 더 한다.

차상위계층인 한 학부모는 “장학금 지원이 부족하다 보니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이 허울뿐인 배려에 그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토로했다. 학교도 답답하다. 학교 측은 “사회적 배려 대상자 학생 모두에게 전액 장학금을 주고 싶지만 학교 재정상 그럴 수 없는 고충이 있다”며 “우리로서도 고민”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제중 설립과정에서 처음 논의된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 할당 비율은 정원의 7%였다. 이렇게 뽑은 학생들에게는 교육비 전액을 지원한다는 방침이었다. 설립이 한 차례 보류되면서 이 비율은 20%로 늘었고 장학금도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 지급하도록 바뀌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한정돼 있던 사회적 배려 대상자 선발 대상이 차상위계층, 새터민 자녀, 소년소녀가장 등으로 확대되면서 비롯된 일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행정기관 확인 결과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은 전체 가정의 5% 수준으로 나타난다”면서 “학교 설립을 서두르다 보니 선발 비율이 실제 수요를 넘어선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학교 측이 장학금 재원 확보에 소홀했다는 지적도 있다.

현 정부는 ‘평준화 교육을 보완하겠다’며 다양한 형태로 학교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때마다 ‘귀족 학교’ 논란이 불거졌고 교육 당국은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학교를 건립할 때 “학교는 의무적으로 정원의 20%를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선발한다”는 표현은 거의 ‘공식’이 되다시피 했다.

내년에 서울 은평구 진관외동 은평뉴타운에 들어서는 자립형사립고 하나고도 정원 20%를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으로 뽑는다. 기존 특목고도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정원의 20%로 늘리려는 분위기다. 내년에 문을 열 예정인 30개 ‘자율형 사립고’도 마찬가지다.

김혜숙 연세대 교수(교육학)는 “교육적 측면에서 최소 20%는 유지해야 사회적 배려 대상자가 학교생활에서 마이너리티로 밀려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다만 “재단전입금을 늘리는 것이 우선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교육청 차원에서 학생 단위 지원을 늘리는 방식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며 “전입금 비율이 높은 학교에 자율성을 더 많이 보장하는 방안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각 학교에 지급하던 ‘재정결함 보조금’으로 국가 차원에서 장학재단을 만드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자율형 사립고로 지정되기 전 학교에 지원하던 예산을 학생에게 직접 지급한다는 것이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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