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위의 공무원단체협약

  • 입력 2009년 3월 24일 03시 04분


차량제공-출장비 등 근거없이 운영비 지원

행정기관 고유권한인 포상-감사까지 대행

‘법보다 우선하는 무서운 공무원 단체협약.’

부산의 한 기초자치단체는 지난해 노조와 ‘본 협약에서 정한 기준은 공무원법 및 제 법령, 규칙, 규정보다 우선한다’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노사 합의사항이 법에 배치되더라도 우선적으로 효력을 인정하기로 한 것.

그러나 이 협약은 공무원노조법에 따라 단체협약으로서의 효력이 없는 위법 사항이다.



23일 노동부에 따르면 중앙부처, 광역 및 기초지자체, 시도교육청 등 112개 공공기관이 2006년 공무원노조법 시행 이후 노조와 체결한 단체협약(1만4915개 조항) 중 22.4%(3344개 조항)가 이처럼 위법 또는 비교섭 및 부당 협약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는 앞으로 해당 기관이 단체협약을 시정하지 않을 경우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고, 경비 지원 등 비용이 들어간 위법 사항에 대해서는 노조가 배상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근거 없이 유급 노조 전임자 인정=B기관은 단체협약에서 ‘노조가 추천하는 노조 간부(2명 이상)에 대해 노조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고 규정하며 사실상 유급 노조 전임자를 인정했다.

하지만 현행 공무원노조법은 국가 및 지방공무원이 노조 전임이 될 경우 휴직하도록 하고 있으며 보수 지급을 금지하고 있다.

노조 활동에 대한 경비 지원도 마찬가지다.

현행 노동조합법은 사용자가 노사 합의로 사무실 관리비, 차량 제공, 출장비 등 노조 운영비를 지원하는 것을 부당 노동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지자체에서 ‘기관은 노조가 요청할 경우 관리 운영에 지장이 없는 범위 안에서 각종 시설물과 행정 및 재정을 적극 지원한다’는 단체협약을 체결해 노조가 지원을 받고 있다.

전남의 한 기초단체의 경우 노조 활동을 위해 국내외 출장을 가는 경우도 공무 출장으로 인정해 출장비를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노동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민간(내년부터 시행)과 달리 공공기관의 경우 노조 전임자에 대한 보수 지급은 불법이지만 각 지자체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다”며 “향후 단체협약이 시정되지 않을 경우 노조가 배상하는 문제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행전안전부도 이날 유급 노조 전임자 인정 등 불법관행에 대해 5월까지 징계 등의 조치를 하도록 각급 행정기관과 지자체에 권고했다고 밝혔다.

행안부는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서 전국 98개 공무원노조의 위원장과 부위원장, 사무총장, 지부장, 본부장 등 556명 가운데 546명이 휴직하지 않은 채 불법으로 노조 전임활동을 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감사·포상까지 노조와 협의=서울의 한 기초자치단체는 ‘구는 원활한 노사관계를 위해 노조에 공헌한 자에 대해 노조의 추천을 받아 포상한다’는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사실상 노조가 기관장의 포상권을 일부 대행한 셈이다.

지방의 한 시는 ‘감사는 처벌 위주의 잘못된 관행을 탈피해 예방, 우수사례 전파 중심으로 실시한다’고 단체협약에 명시했다. 한 지자체도 ‘동(洞)에 대한 정기 감사는 2일로 하고 관련부서에서 지원, 지도 방안을 마련하는 방법으로 동 감사를 점진적으로 폐지한다’고 규정했다.

노동부는 “감사에 대한 단체협약은 형식적으로는 취지와 방향을 말한 것이지만 사실상 감사 방식과 내용까지 규정한 것”이라며 “감사 및 포상은 행정기관의 권한과 책임 아래 해야 할 사안으로 노조와의 교섭 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노동부 이채필 노사협력정책국장은 “노조의 무리한 요구와 단체협약에 대한 기관의 전문성 부족, 선거 등 기관장의 정치적 고려 때문에 이 같은 불합리한 관행이 형성됐다”며 “앞으로 민간 부문의 단체협약까지 분석해 문제점을 지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이날 성명을 통해 “노동부가 대표적 불법 조항으로 언급한 유급 노조전임자, 노조 활동 경비 지원 등은 이미 문제가 있다고 지적돼 현재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 중”이라며 “제 공무원단체가 대정부교섭을 앞둔 시점에서 노동부가 어떤 의도로 이런 자료를 발표하는지 의아스럽다”고 말했다.

전국공무원노조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내년부터 민간부문에서는 금지되는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를 염두에 두고 미리부터 쐐기를 박자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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