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대덕밸리 이야기<24>전자통신연구원

특허만 2만6000건… 한국IT ‘기술 젖줄’

CDMA-와이브로 등 첨단 핵심기술 개발

연구원 출신들 잇단 창업 ‘벤처 사관학교’

4일 오후 대전에서 서울로 가는 KTX에 탑승한 김모 씨(51·기업체 간부)는 휴대전화로 메일이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노트북 PC를 켠 김 씨는 서울에서의 약속 장소가 바뀌었다는 내용을 확인한 뒤 답신을 보냈다.

시속 300km로 달리는 기차 안에서 아무런 장애 없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메일을 보내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인터넷과 통신환경이 마치 ‘빛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발전의 중심에 대전 대덕특구의 전자통신연구원(ETRI·원장 최문기)이 있다.

1976년 설립된 ETRI는 그동안 전전자교환기(TDX), 초고집적 반도체(DRAM), 행정전산망용 주전산기(TiCOM), 부호분할다중접속(CDMA)시스템, ATM 교환기, 광전송시스템(40G), 지상파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와이브로(WiBro), 3.6Gbps 4세대 무선전송시스템(NoLA) 등의 쟁쟁한 정보기술을 개발해 냈다. 우리나라 정보기술(IT)산업을 이끄는 ‘기술 젖줄’ 역할을 30년 동안 해 온 것.

최문기 원장은 “외부 조사기관이 CDMA 기술에 대해 2002년까지 10년간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결과 66조36억 원에 달했다”며 “이는 개발비의 297배로 ETRI 전체의 국가경제 기여도는 104조5725억 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ETRI에는 1900여 명의 정규직원이 있다. 이들 중 박사가 38%, 석사 59%다. 그동안 출원한 국제특허가 5875건, 국내 특허는 2만943건에 달한다. 또 기업체에 이전한 기술은 4264개 업체에 2515건으로 5821억 원의 기술료 수입을 올렸다.

최근 개발한 기술 중 하나는 세계 최초의 4세대 이동통신 핵심 무선기술인 ‘와이브로 에벌루션(Wibro Evolution)’. 이를 통해 시속 350km로 달리는 차량에서도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고 MP3 음악파일 1개를 0.2초 만에, 영화 CD 1장(700MB)을 37초 만에 다운 받을 수 있다.

연예인 전지현 씨의 휴대전화 복제 사건으로 논란이 됐던 보안성을 강화하기 위해 최근 모바일(mobile)기기용 집적회로(mTPM 칩)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ETRI 출신들은 정재계, 교육계 진출도 활발하다.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최순달 전 체신부 장관과 경상현 초대 정보통신부 장관, 양승택 전 정보통신부 장관 등이 모두 ETRI 출신. 또 전자공학, 컴퓨터공학, 전산학 등의 대학교수 1100여 명이 ETRI 출신이다.

ETRI는 ‘벤처 사관학교’로도 불린다. 벤처 창업이 한창이던 2000년 ETRI 출신들은 250여 개의 벤처를 설립했다. 아펙스, 핸디소프트, 서두인칩, 빛과전자, 케이엘테크, 해빛정보 등 코스닥 등록업체만도 14개에 이른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ETRI는 새롭게 조직을 개편했다. IT 기반의 미래 원천·핵심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연구조직을 △방송통신융합연구부문 △SW콘텐츠연구부문 △융합기술연구부문 △융합부품·소재연구부문 등으로 개편한 것.

최 원장은 “우리나라를 세계 정보통신 일등국가로 만들기 위해 모든 연구원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인류에게 더욱 즐겁고, 편리하고,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게 할 신기술 창조를 위해 연구소의 불은 24시간 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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