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같은 조건에서 장학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 입력 2009년 3월 4일 02시 55분


“초등교사 28년, 중등교사 23년”

초-중등 서로 다른 교육전문직 인사제도

3월이면 교직사회는 술렁인다. 봄바람 때문이 아니라 인사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주요 일간지에는 서울시교육청의 인사가 실렸다. 무려 491명이나 되는 교장, 교감, 장학관, 장학사의 발령 사항이 지면을 덮었다. 지방도 마찬가지다.

인사 발표 직후 서울 시내 초등학교 K 교감 선생님이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불만을 털어놨다. “인사를 자세히 봐라. 중고교 교감 3명은 장학관으로 발령이 났지만 초등 교감 9명은 장학사로 발령이 났다. 초등학교 교원 가운데 장학관이 된 3명은 모두 교장 출신이다.”

학부모들의 기억 속에 막강한 ‘교육 권력자’로 각인돼 있는 그 장학사, 장학관 얘기다. 지금은 장학사가 일선 학교를 방문한다고 옛날처럼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동원해 대대적인 청소나 환경미화를 하는 일은 없지만, 장학사 장학관은 여전히 교직 세계의 ‘엘리트 코스’다.

○ 교사들의 여전한 엘리트 코스

교육 경력이 같더라도 장학사와 평교사는 하는 일이 판이하다.

한 광역시 교육청 장학관인 A 씨와 사립중 교사인 B 씨는 50대 초반으로 여고 동창이자 사범대 동기였다.

A 씨가 14년 전 장학사 시험에 합격하면서 둘의 사이는 어색해졌다. A 씨가 장학사와 교감을 거쳐 장학관으로 승진하는 동안 B 씨는 평교사에 머물렀다. A 씨가 장학사 시절 일선 학교의 보충수업 현황을 점검할 때 B 씨는 보고 서류를 만들었고, B 씨가 직무 연수를 받을 때 A 씨는 강사로 섰다.

지난해 서울시교육청 장학사 모집의 평균 경쟁률은 7 대 1이었다. 장학사가 되면 승진에 반영되는 ‘근무 경력 가산점’을 최대 1.00점까지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장학사에 대한 교사들의 선호도도 대단히 높다. 기회만 되면 누구나 장학사 장학관의 길을 걷고 싶어 한다. 무엇보다 승진이 빠르기 때문이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승진이 빠르고 교육청에서 쌓은 인맥 등이 나중에 학교로 돌아와서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누구나 선망한다”고 말했다.

장학사는 교원 인사, 교육 정책 수립, 교원 연수, 학교 교육 활동 지원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한다. 일정 기간 근무한 뒤에는 장학관으로 승진해 장학사의 업무를 지도하고 조언하게 된다.

○ 초등 장학사와 중등 장학사의 갈등

엘리트 코스에 쏠린 눈은 많다. 그래서 장학사 사회에도 갈등이 없지 않다.

국제중 원서 접수가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초등학교 6학년 교사들이 국제중 입시안 변경에 반발하며 원서 접수를 보이콧하고 나섰다.

초등학교 학교생활기록부는 평가 결과를 서술형으로 적도록 돼 있는데 국제중이 단계별 평가를 요구했고, 이를 시교육청이 받아들이면서 현장 교사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

초등 교사들은 “5학년 때 작성된 서술형 평가를 4단계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일을 처리한 (중등)장학사가 초등 교육과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갈등은 역사가 짧지 않다. 인사 때마다 초등 장학사들은 불만을 쏟아냈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초중고교 모두 장학사가 되려면 총경력 15년이 필요하다. 하지만 장학사가 된 이후 장학관이 되는 속도는 차이가 난다.

중고교 교사는 평균 8년이면 장학관으로 승진할 수 있지만 초등 교사는 5년이 더 걸리고 시험도 한 차례 더 치러야 한다.

중등 장학사는 교감을 거치지 않아도 장학관이 될 수 있지만, 초등 교사는 교장까지 거쳐야 장학관 자리에 오른다.

이 때문에 초등 장학사 사이에는 장학사로 오래 근무하기보다 일찍 교감으로 나가려는 경향이 많다. 어차피 다녀와야 하는 만큼 빨리 다녀오는 편이 낫다는 것.

반면 중등 장학사들은 연속적으로 업무를 추진하면 자기 ‘전공’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장기간 전문직 근무를 선호한다.

○ 인사 제도를 보는 시각도 다르다

K 교감 선생님은 평균 5년이나 차이가 나는 초등-중등 간의 이런 인사 시스템을 ‘교대가 2년제이던 시절의 잔재일 뿐’이라고 말한다.

교대가 1981년 4년제로 전환하기 전까지만 해도 2년제였을 뿐 아니라 5년간 교직에 근무하면 현역 입대를 면제받았기 때문에 사범대를 졸업한 중고교 교사보다 교직에 더 일찍 나간 것뿐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중등 쪽에서는 “같은 장학관이라도 초등 교장 출신은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맞선다. 또 “초등 교장들은 임기(8년)를 다 채운 뒤에도 정년이 남으면 평교사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중간에 장학관을 하면 교장으로 정년을 마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오히려 초등 교장들이 현재의 인사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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