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크레인노조의 ‘협박성 취업 시위’

  • 입력 2009년 2월 12일 02시 55분


“조합원 고용 촉구하라” 대형 건설사 상대 시위

일감 부족한 하청업체 ‘울며 겨자먹기식’ 채용

안통하면 안전위반 촬영해 고발… 관철뒤 취하

지난달 8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충북회관’ 건설현장. 민주노총 산하 전국건설노조 타워크레인 분과 서울경기지부 노조원 10여 명이 집회용 승합차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승합차에 달린 확성기를 통해 ‘철의 노동자’ 등 민중가요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이들은 “시공사인 D건설은 협력업체의 노조 조합원 고용을 촉구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D건설로부터 타워크레인 작업을 하청 받은 협력업체 직원들이다. ‘갑(甲)’인 원청 건설사를 압박해 ‘을(乙)’인 하청업체가 노조원을 타워크레인 기사로 고용하도록 압박하는 것.

조합원 이모(41) 씨는 “타워크레인을 운용하는 하청업체들이 파업 우려가 있다며 조합원 고용을 회피해 이런 방법을 짜냈다”고 밝혔다.

D건설 관계자는 “노조원들이 본사나 공사현장에서 시끄럽게 집회를 열면 회사 이미지에 타격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이럴 경우 하청업체에 원만하게 해결해 달라고 부탁한다”고 말했다.

최근 건설경기 침체로 공사 물량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영세 하청업체는 일감을 쥐고 있는 원청업체의 요구를 거스를 수 없다.

타워크레인 작업 하청업체인 A사 관계자는 “일감이 없어 하루에도 타워크레인이 수십 개씩 멈춰서는 마당에 원청업체의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다”며 “어렵게 뚫어놓은 거래가 끊길까 두려워 노조원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조는 집회신고 자체로 타워크레인 업체를 압박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집회 신고만 하고 실제로 집회를 열지 않는 ‘유령집회’ 사례가 다반사다. 지난해 전국건설노조 서울경기타워크레인지부의 경우 집회신고는 1만3163건(8월 기준)이나 했지만, 실제 집회는 33번밖에 열리지 않았다.

‘집회 압박’에도 하청업체가 노조원을 고용하지 않으면 타워크레인 노조는 다음 단계로 들어간다. 타워크레인 공사현장을 돌며 헬멧 미착용이나 용접기 보관 소홀 등 안전 수칙에 어긋나는 장면을 촬영해 원청업체를 관할 노동청에 고발하는 것. 노동청에 고발돼 당혹스러워하는 원청업체를 상대로 노조는 ‘거래’를 시도한다. 협력업체에서 노조원을 고용하면 벌금이 나오지 않도록 합의해 주고 고발도 취하해 주겠다고 제안하는 것. 원청업체로부터 또다시 조용한 해결을 요구받은 하청업체는 더는 이를 거절하기가 어렵다.

이래저래 ‘울며 겨자먹기식’ 노조원 채용이 늘면서 타워크레인 업체들의 채산성은 크게 악화되고 있다. S건업의 경우 새로 채용된 노조원들이 “하루 8시간 노동 원칙을 지켜야 한다”며 근무시간을 오전 7시∼오후 4시로 관철시켰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업장에서 공사를 오후 6시까지 진행하기 때문에 2시간 부분은 시간외수당을 줘야 한다. S건업은 인건비 부담에 시달리다 최근 파산 위기에 놓였다.

타워크레인 노조 정민호 분과장은 “원청업체의 눈치를 봐야 하는 하청업체의 고통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도 생존권을 위협받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며 “한 명이라도 더 취업을 하려면 타워크레인이 설 때마다 시위를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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