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테이션]갈데까지 간 안방극장 ‘막드’

  • 입력 2009년 1월 15일 16시 30분


◆막장드라마 해부

(박제균 앵커) 요즘 '막드', 즉 '막장 드라마'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막장이라는 말은 원래 광산 갱도의 끝을 뜻하는 말이죠. 그러니 막장 드라마는 '갈 데까지 간' 드라마라는 뜻이 됩니다.

(김현수 앵커) TV 드라마에 개연성 없는 스토리와 극단적인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우연한 사건, 출생의 비밀과 불치병, 첨예한 고부갈등 등의 소재가 남발됐기 때문인데요. 예전에는 주로 아침드라마에서 그런 특징이 나타났는데, 요즘에는 일일극과 평일 오후 10시 대 드라마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스튜디오에 문화부 조종엽기자가 나와있습니다.

(박 앵커) 조 기자, 이런 막장드라마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조종엽)

9일 끝난 KBS 일일극 '너는 내 운명'이 한 가지 예인데요. 고아로 태어나 앞을 못 보던 주인공 장새벽이 자신에게 각막을 이식해준 나영의 부모님에게 입양된 후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 얘깁니다. 제작진은 애초에 "입양과 장기기증에 대한 편견을 타파하고 상처를 극복한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그리겠다"고 기획의도를 말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가 회를 거듭하면서 고아인 여자 주인공이 주위의 반대와 갖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대기업 회장 아들을 만나서 결혼하는 설정이 뻔하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또 주인공에 대한 시어머니의 시집살이가 증오에 가깝게 묘사됐습니다. 뜬금없이 배추 100포기를 사와 하루 만에 절이라고 주문하는가 하면, 아들·며느리의 혼인신고 서류를 대신 제출하겠다고 한 뒤 찢어버리는 행동을 서슴없이 합니다.

(김앵커) 한국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백혈병도 나온다면서요.

(조) 네, 구박을 일삼던 시어머니가 백혈병에 걸리는데 알고 보니 며느리 새벽과 골수가 일치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새벽의 생모도 백혈병에 걸리는데 또 새벽과 골수가 일치하죠. 즉 시어머니와 생모, 주인공이 모두 골수가 같아, 어느 어머니에게 골수를 줄지 고민해야하는 말도 안 되는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런 자극적인 설정이 계속돼 '너는 내 운명' 막장 드라마라는 오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연기력 논란도 있었는데요. 호세 역을 연기한 탤런트 박재정은 누리꾼들로부터 '발호세 그러니까, 연기를 발로 한다, 즉 매우 못한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었고, 어색한 연기 장면을 모은 UCC 동영상이 인터넷상에서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극중 캐릭터 자체가 비현실적인데 과연 연기가 자연스러울 수 있겠냐는 지적도 있었죠.

(박앵커) 시청률 고공 행진 중인 '아내의 유혹'도 막장 드라마로 꼽힌다면서요?

(조) 예, SBS '아내의 유혹'은 현모양처가 요부가 되는 이야깁니다. 부동산 재벌가의 며느리인 착한 여자 은재가, 친자매처럼 자란 나쁜 친구 애리 때문에 남편에게 버림받고, 복수의 화신으로 변신한다는 줄거린데요, 은재는 예전의 남편 교빈을 다시 유혹해 빼앗고 남편의 파탄 내버린다는 이야깁니다.

아내 친구의 유혹으로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 부부의 침대에서 정사를 나누는 장면도 나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낙태를 종용하다가 바다에 빠트려 버리기도 합니다.

결국 복수의 화신이 된 아내 은재는 변신을 거듭해 화려한 무용 실력을 뽐내며 남자를 유혹합니다. 물론 이전에는 춤 한번 춰 본적 없는 인물로 설정됩니다.

옥상에서 뛰어내려도 멀쩡하고 숯불에 입은 화상 흔적은 화장품으로 완벽하게 감춥니다. 외국어는 테이프 몇 번만 듣고 단 시간에 마스터합니다. 네티즌들은 복수를 위해 뭐든지 해내는 주인공 구은재 이름과 하느님을 합친 '구느님'이라는 별명을 만들었습니다.

(김앵커)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내용이 인기를 끄는 걸까요?

(조) '너는 내운명'은 9일 마지막회 시청률이 40%가 넘을 정도로 인기를 모았습니다. 작년 11월 3일 11.9%의 시청률로 시작한 '아내의 유혹'은 두 달 만에 무려 시청율을 20%포인트 끌어 올렸고, 어제 방송분은 34.7%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흔히 욕하면서 본다고 하는데요, 막장 드라마의 시청률이 높은 것은 그만큼 자극적이기 때문입니다. 경제도 힘들고 삶이 팍팍해지면서 시청자들이 드라마에 빠져 잠시 현실을 잊고 싶어 한다는 분석입니다. 또 드라마의 주 시청자층인 주부들의 경우 가정에 희생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현실에서 일일드라마를 보는 것 말고는 스트레스 해소를 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시기에 화나고 답답한 사람들에게 맘 놓고 욕할 대상을 던져줘 스트레스를 방출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이죠. 이렇게 보면 막장 드라마라고 무작정 비난할 수 없는 면이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인터넷 등 새로운 미디어의 발전으로 젊은 시청자 층이 TV를 떠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 층의 감각에 맞는 드라마보다 중장년층의 감성에 손쉽게 소구하는 드라마가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방송사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작비에 높은 시청률을 담보하는 드라마를 선호하고요. 방송사가 손쉽게 시청률을 올리려는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막장 드라마의 제작과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박앵커) 조 기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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