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사서교사 배치 올해 ‘0’

  • 입력 2009년 1월 15일 03시 03분


정보 넘쳐나는 시대에 말로만 독서교육?

서울시내 538개교 중 26곳만 운영… 수년째 제자리걸음

교과부-교육청 “사서도 교사정원 포함돼 늘리기 어려워”

배수빈(13·서울 용동초등 6년) 양은 방학 중인 요즘도 거의 매일 학교 서관 1층 끝에 있는 학교 도서실을 찾아 책을 읽는다. 1주일에 3, 4권의 책을 빌려가 읽는 것은 기본이다.

수빈이는 3학년 때까지만 해도 책을 가까이 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4학년 때 용동초교로 전학을 오면서 책을 대하는 태도가 확 바뀌었다. 부모님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도서실을 찾고, 필요한 정보를 선별해서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길렀다.

“도서실 수업이 너무 재미있던 걸요. 책을 한꺼번에 더 많이 빌릴 수 있다고 해서 도서부원도 됐어요.”

용동초교의 도서실은 여느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일렬로 죽 늘어선 책꽂이에는 1만5000여 권의 책이 꽂혀 있고, 책을 읽는 탁자가 놓여 있다.

다른 점은 딱 한 가지, 학교 도서실을 지키는 ‘사서교사’가 있다.

사서교사인 박영혜(33) 교사는 학기 중 학생들에게 정기적으로 독서지도 ‘수업’을 한다. 도서실 관리만 하는 일반 사서와 달리 사서교사는 임용시험을 통과한 정식교원으로 독서지도를 위한 교육과정을 짜고 수업까지 진행한다.

독서지도 수업은 단순히 책과 친숙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수빈이는 지난해 6월 도서실에서 받은 ‘진로 가이드 북 만들기’ 수업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때 아이들이 한 번 더 하자고 선생님에게 졸라대고 그랬어요. 제 꿈이 검사가 되는 것인데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검사라는 직업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어 너무 좋았어요.”

어떤 수업이었기에 아이들이 그랬을까. 박 교사는 아이들에게 먼저 책과 인터넷을 통해 ‘꿈에 다가가는 길’을 탐색하도록 했다. 필요한 정보를 명확히 하는 방법,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책과 인터넷 사이트를 알아내는 법, 찾은 정보 중 필요한 것을 선별하는 법 등을 가르쳤다. 마지막에는 비슷한 꿈을 가진 학생들이 각자 만든 진로가이드 북을 놓고 토론을 했다.

그러나 수빈이처럼 사서교사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아이들은 극히 제한돼 있다.

서울 시내 538개 초등학교 중 사서교사를 두고 있는 곳은 26곳에 불과하다. 더구나 올해 새로 배치되는 사서교사는 한 명도 없다. 수년째 초중고교 사서교사 배치는 제자리걸음이다.

사서교사가 없는 일반 학교에서는 시간당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직원이 도서관리만 하는 방식으로 도서실이 운영되고 있다. 그나마 사서를 구하지 못한 곳에서는 일반 교사가 도서실 담당을 맡아 특정 시간대에만 도서실을 열고 있다.

하지만 교육과학기술부나 서울시교육청은 사서교사를 늘리는 데 난색을 표한다. 교원의 총정원에 사서교사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쉽게 정원을 늘릴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이 때문에 사서교사의 중요성을 아는 일부 학교에서는 학교발전기금으로 사서교사 자격이 있는 사람을 고용하고 있다.

행현초교 교감 때 학교발전기금으로 사서교사를 채용했던 차영현 응봉초교 교감은 “일반 사서는 단순히 책을 관리하는 데 그쳤지만 사서교사 자격증을 가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책을 가까이 하는 방법부터 차근차근 가르치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고 말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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