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집 안에 화장실 생긴다니 꿈만 같아”

  • 입력 2009년 1월 6일 07시 01분


소록도 한센인마을 75년만에 새단장…4월부터 단열처리 개보수

“한겨울에 야외 화장실을 가려면 시베리아 벌판에 나서는 것 같았는데…. 이젠 그런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한센인의 보금자리인 전남 고흥군 소록도 중앙마을에 사는 강태환(79) 할아버지는 집 안에 화장실이 설치된다는 소식에 어린아이처럼 들뜬 표정이었다.

강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중앙마을은 1934년 소록도병원이 들어서면서 조성됐다. 벽돌집은 낡을 대로 낡았고 공동화장실은 집에서 20∼30m 떨어져 있어 겨울이면 화장실 다니는 일이 무엇보다 큰 고통이었다.

강 할아버지는 “벽이 얇고 창과 창틀이 맞지 않아 틈새로 바닷바람이 들어와 이불을 몇 겹 덮어도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고 말했다.

국립소록도병원 한센인 마을이 75년 만에 새롭게 단장한다.

국립소록도병원은 올해 정부에서 40억 원을 지원받아 한센인 거주시설에 대한 전면 개보수 사업을 벌인다.

병원 측은 4월부터 11월까지 거주시설 44개 동 가운데 18개 동에 실내 화장실을 설치하고 단열 처리를 할 계획이다.

나머지 26개 동과 병원 치료공간 개보수는 내년에 착수할 예정이다.

병원에는 한센인 625명이 거주하고 있다. 65세 이상이 76.2%, 장애인이 91%를 차지해 주거환경 개선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동안 병원에 지원된 한센인 거주시설 개보수 비용은 매년 2억3000만 원에 불과했다. 이 돈은 비가 새는 슬레이트 지붕이나 노후된 수도꼭지 교체 비용으로 쓰기에도 충분하지 않았다.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자 병원 측은 2007년 에너지 절약 캠페인으로 8억 원을 아껴 개보수 비용으로 충당하고 지난해에는 자치단체와 대기업에 협조를 요청해 하수구와 내부시설을 교체하기도 했다.

이번 예산 지원은 한센병을 앓은 적이 있는 한나라당 임두성 의원의 노력이 컸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인 임 의원은 소록도의 열악한 주거시설 실태를 알리고 예산을 따냈다. 임 의원은 1968년 한센병에 걸린 후 소록도에서 치료를 받아 3년 만에 완치됐다.

해마다 겨울이면 추위에 떨어야 했던 한센인들은 벌써부터 새 건물에서 보내게 될 겨울을 기대하고 있다.

김정행(70) 소록도 자치회장은 “소록도에 이렇게 많은 예산이 한꺼번에 지원되는 것은 처음”이라며 “한센인 평균 나이가 75세를 넘어 이들이 여생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내년 예산도 차질 없이 지원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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