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1939년 선배들은 만주 수학여행”

  • 입력 2008년 8월 28일 06시 37분


1931년 개교 김천중고교 설립자 이름 딴 ‘송설역사관’ 31일 개관

“영남의 오아시스” 여운형-조만식 등 지도자 개교 축사

동문 4만여명이 자료 모아… “후배들 인재로 자라주길”

“일제강점기의 어려운 환경에서도 인재를 키우겠다던 뜻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요.”

경북 김천시 부곡동 김천중고교 교정 한쪽에 있는 ‘송설역사관’. 31일 개관을 앞두고 마지막 점검을 하던 이 학교 백승환(50) 교사는 27일 “동문 4만여 명이 77년 역사를 모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창회는 4억 원가량의 기금으로 옛 도서관 건물(466m²)을 개조해 2층짜리 역사관을 꾸몄다. 2000년 총동창회 모임 때 역사관 건립을 시작한 지 8년 만이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졸업생들은 당시 사진과 상장, 성적표, 타고 다니던 자전거, 개교 소식을 알린 신문기사 등 600여 점을 모았다.

1층 벽면에 꾸며 놓은 이 학교의 역사는 당시 국내외 주요 사건을 대조해 눈길을 끈다. 1931년 개교 때는 만주사변이 일어났으며 1932년 윤봉길 의사가 중국 상하이에서 일본군에게 폭탄을 던졌을 때는 교가(校歌)를 제정했다.

1933년 독일에서 히틀러가 집권했을 때엔 제1회 운동회가 열렸고 1934년 미국에서 뉴딜정책이 나왔을 때는 제1회 내한(耐寒·추위를 견딤)마라톤이 열렸다. 내한마라톤은 지금도 매년 12월 전교생이 여름 체육복을 입고 학교 주변을 5km가량 달리는 전통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2층에는 학교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각종 자료가 전시돼 있다. 1939년 만주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찍은 사진을 비롯해 당시 전국에서 모인 인재들이 공부하던 모습도 곳곳에 전시돼 있다.

이 학교는 김천 출신으로 영친왕의 보모 최송설당(1855∼1939)이 전 재산(당시 30만2100원)을 기부해 설립됐다. 당시 사학을 설립해 교육에 앞장선 안창호(대성), 이승훈(오산), 민영휘(휘문) 등이 모두 남성인 데 비해 최송설당은 유일하게 여성이었다.

개교 때는 여운형 조만식 등 당시 지도자가 대거 참석했을 정도로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여운형은 축사에서 “영남지방의 오아시스같이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당시 춘원 이광수는 “최송설당의 갸륵한 행위는 전설적 조선정신에서 나온 것”이라고 잡지 ‘동광’에 썼으며 동아일보는 인터뷰 기사와 함께 ‘거룩한 최송설당’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1935년 최송설당의 동상이 교내에 세워졌을 때는 송진우 여운형 백남훈 등 지도층 인사 1000여 명이 찾았으며 김성수 한용운 조만식 등은 축전을 보낼 정도였다.

최송설당은 1939년 6월 숨지기 전에 “잘 교육받은 한 사람이 나라를 바로잡고 잘 교육받은 학생 한 사람이 동양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고 유언했다.

전시비용 1억 원을 낸 송석환(64·서울 동진기업 회장) 총동창회장은 “최송설당의 높은 뜻을 이어 후배들이 인재로 자라 나라를 이끌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고 말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 정해창(송설교육재단 이사장) 전 법무부 장관, 언론인 배병휴 씨 등이 이 학교 출신이며 가수 이미자를 발굴한 작곡가 나화랑(본명 조광환) 씨도 동문이다.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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