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닌텐도 DS 딜레마

  • 입력 2008년 8월 26일 03시 01분


《주부 박건진(37·서울 성북구 장위동) 씨는 지난해 말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아 기특했던 아들. 하지만 “한자경시대회 5급을 따면 닌텐도DS를 사주겠다”고 한 아들과의 약속을 지킨 뒤부터 박 씨의 입에선 잔소리가 끊일 날이 없었다.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DS에 무섭게 ‘몰입’하기 시작한 아들은 한 번 게임을 시작하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끝낼 줄 몰랐기 때문이다. 가족끼리 외식을 하러 나가서도, 물놀이를 가서도 아들의 정신은 온통 손바닥에 있는 게임기에만 집중돼 있었다.

“압수 한다”는 엄포를 놓아야만 마지못해 전원을 껐다. 집 밖에 나갈 일이 생기면 “아싸!”하고 외치며 게임기부터 챙기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닌텐도DS가 눈에 안 보이면 불안한 기색을 보이며 ‘금단현상’을 나타내는 아들을 보면서 더는 두고 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 박 씨는 일주일간 닌텐도DS를 숨겨놓고 아들에게 주지 않았다.

이후 “잘못했다”면서 ‘백기 항복’을 한 아들과 함께 박 씨는 ‘닌텐도 사용규칙’을 정했다. 매일 정해진 학습량을 마쳤을 때만 게임을 하고, 사용시간은 하루 30분을 절대 넘지 않도록 한 것. 사용규칙을 어겼을 때는 ‘무기한 압수’라는 강경책을 써 아들이 절대 규칙을 어기지 못하도록 했다. 박 씨는 “아들이 요즘엔 게임시간을 스스로 조절하면서 공부를 잘하고 있지만 초기엔 통제하기가 힘들어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어머니들이 닌텐도DS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본 닌텐도사가 제작한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DS는 지난해 1월 국내 출시된 후 올해 3월까지만 140만 여대가 팔렸다. 특히 초등학생 사용자들이 많아, 30명 정원인 한 학급에서 적게는 5, 6명, 많게는 15명 이상이 이 게임기를 갖고 있을 정도.

지금도 두어 집 건너 한 집씩은 “엄마 닌텐도DS 사줘” “기말고사 평균 95점 이상 받으면 사줄게” 하는 아이와 부모의 실랑이가 벌어진다. 닌텐도DS, 이 ‘요물’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 아이들, 왜 미칠까?

일단 닌텐도DS는 ‘기동성’이 강하다. 집이나 PC방으로 사용공간이 한정되는 온라인 컴퓨터 게임과 달리 학교나 학원에서도, 아빠가 모는 자동차 뒷자리에서도,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에서도, 심지어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면서도 할 수 있다. 온라인 게임처럼 ‘공유’도 가능하다. 기계 본체에 무선 기능이 장착되어 있어 케이블 없이도 반경 10m 내에서는 똑같은 소프트웨어를 가진 8명까지 함께 게임을 할 수 있다. 같은 휴대용 게임기인 PSP(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가 다소 복잡하게 작동시켜야 하는 것과 달리, 닌텐도DS는 비교적 간단한 조작으로 게임이 가능해 아이들이 쉽게 빠진다.

○ 게임의 늪

무턱대고 아이에게 닌텐도DS를 사줬다가 후회하는 부모가 적지 않다. 방학인 아이가 하루 5시간도 모자란다면서 순식간에 ‘닌텐도 폐인’으로 전락해 버리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에게 이 게임기를 사주기로 이미 약속했다면 구입 전에 자녀와 분명하게 사용규칙을 정해야 한다. 가급적이면 이런 규칙을 종이에 커다랗게 써서 거실에 붙여놓으면 더 효과적이다. 언제, 얼마동안 사용할지, 그리고 게임 소프트웨어는 어떤 종류로 한정할지 구체적으로 적는다. ‘규칙을 단 하나라도 어기면 게임기를 일주일간 압수한다’처럼 아이가 받을 벌칙도 명기하고, 아이가 규칙을 어겼을 땐 절대로 마음 흔들리지 말고 약속대로 실천해야 한다.

게임 칩 구입에 쓰는 돈도 무시할 수준이 못된다. 정품 칩 하나가 3만~4만 원이므로 새로운 소프트웨어 칩이 나올 때마다 사주기 시작하면 수십만 원을 쓰는 건 눈 깜짝할 사이다. 일부 부모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70여 가지 소프트웨어를 인터넷에서 내려받아 하나의 칩에 저장하는 이른바 ‘알포칩’을 ‘단돈’ 6만~7만 원에 음성적으로 구입하는 것. 하지만 게임 전문가들은 “알포칩을 사주는 순간, 그 아이는 대학은 다갔다고 보면 된다”고 말한다.

○ 내 아이, 어떻게 통제할까?

자녀가 원한다고 무조건 게임 칩을 사주거나 여러 개의 칩을 한꺼번에 사주는 것은 금물이다. 지금 보유한 게임 칩들을 충분히 가지고 놀게 하면서 흥미를 떨어뜨림으로써 사용시간을 차츰 줄여나가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다. 새로운 게임 칩을 사줄 때도 ‘현재 가진 게임 칩을 두 달 이상 가지고 놀았을 때’와 같은 규칙을 정해야 한다.

놀이미디어교육센터 권장희 소장은 “닌텐도DS는 중독성이 강해 애초에 사주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면서 “온 가족이 함께하는 활동을 시작하거나 운동 등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닌텐도DS, 이런 측면도…

일부 아이들은 이런 부모의 제한에도 불구하고 게임 칩을 서로 교환함으로써 난관(?)을 헤쳐나간다. 게임 칩의 공유는 아이들 간의 공감대 형성이란 의미도 갖는다.

서울 장위초등학교 5학년 강다솔 양은 “같은 게임을 하는 친구들끼리는 금세 친해져요”라면서 “어른들은 ‘왜 어울려 놀진 않고 게임만 하느냐’고 하지만 게임을 함께하는 게 어울려 노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일부 아이들 사이에선 닌텐도DS가 있고 없음이 하나의 분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 게임기가 없어 다른 애들이 게임하는 걸 어깨 너머로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아이를 보면 사주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부모도 있다.

초등학생 사이에 하나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은 닌텐도DS. 이 게임기를 자녀에게 안 사줬다가 “엄마 아빠 때문에 ‘왕따’ 당했다”는 아이의 충격적인 발언을 듣는 부모의 고민은 늘어만 간다.

<도움말=놀이미디어교육센터 권장희 소장, 이형초 심리상담센터 소장>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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