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SCHOOL DIARY]매점…‘10분의 전쟁’에도 룰 있다

  • 입력 2008년 8월 19일 03시 01분


허기질 때 피로할 때 운동삼아… 수험생과 매점의 함수관계

딩동댕∼.

10분의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다급하게 계단을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일 분도 지나지 않아 수십 명의 학생이 물밀 듯 매점으로 밀려든다. 50여 종의 과자와 47가지 음료수, 23가지 아이스크림이 구비돼 있고, 식당까지 겸하고 있는 매점은 제법 큰 규모인데도 금세 발 디딜 틈이 없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 청솔학원 지하 2층에 있는 매점(사진)은 한 시간마다 전쟁을 치른다.

이 매점에서 9년째 일하고 있는 정선자(57) 씨는 “10분 동안 평균 100여 명의 학생이 매점을 이용한다”며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미리 예약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말했다. 올해 2월 매점 운영을 시작한 김정내(45) 씨는 “처음엔 물건을 팔고 돈을 제대로 받았는지조차 알기 힘들 정도였다”며 “이젠 미리 돈 통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고, 간이 계산대를 문 앞에 설치해 2인 1조로 계산을 하는 등 전투준비를 단단히 한다”고 말했다.

3층에서 지하 2층까지 필사적으로 매점을 향해 달려온 박모(19) 군. 그에게 매점은 어떤 의미일까? 박 군은 “매점은 학생들에게 일종의 탈출구”라고 말한다.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11시 자율학습을 마칠 때까지 학생들이 유일하게 찾을 수 있는 휴식 공간이기 때문이다.

매점은 ‘수능’이라는 치열한 현실을 잊고 잠시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고민을 공유할 수 있는 장소다. 정신적 해방감에 달콤한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까지 곁들여지니 단 몇 분이라도 천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떤 학생은 매점에서 흘러나오는 최신유행곡이나 당대 히트곡인 ‘땡벌’ ‘무조건’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기도 한다.

박 군은 가끔 딱히 살 게 없어도 매점을 찾는다. 짧은 거리지만 몸을 움직이며 뭉친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서다. 이렇게라도 운동을 하면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이 덜 힘들다.

하루 평균 2, 3번 매점을 찾는다는 백모(19) 군은 매점 이용 수칙까지 꿰고 있다. 김밥과 샌드위치를 사고 싶다면 계산대에서 먼저 ‘번호표’를 받아야 한다. 기호식품이 아닌 ‘허기’를 채워주는 식사류에 해당되는 품목이기 때문에 새치기는 용납되지 않는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물건을 사지 못하므로 일찍 도착해야 한다. 빨리 매점으로 가기 위해 강의실 문 쪽에 자리를 잡는 날도 있다.

외상과 금액 깎기는 ‘절대 금지’이므로 잔돈은 필수다. 하지만 생리적인 현상과 직결된 ‘휴지’만큼은 후불이 가능하다. 백 군은 “줄서기 경쟁이 치열한 남학교 매점에서는 넘어진 학생이 다른 학생들에게 밟혀 응급실에 실려 가는 경우도 있다”며 “학교 매점처럼 치열하지 않지만 학원 매점에서도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으려면 보이지 않는 규칙을 잘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학생이 ‘스트레스 해소’와 ‘재충전’을 위해 매점을 찾다 보니 초콜릿류 상품이 가장 잘 팔린다. 특히 값싸고(350원) 먹기 간편하면서도 포만감을 주는 ‘몽쉘통통’이 인기다. 수업 시간 졸음이 몰려올 때마다 몰래 하나씩 까먹을 수 있는 ‘미니쉘’도 매점의 히트상품이다.

최고의 각성 효과를 자랑하는 ‘커피’는 매년 음료수 부문 매출 1위를 차지한다. 학생들의 ‘웰빙’ 열풍 때문에 ‘비타500’과 우유도 꾸준히 잘 팔린다. 특히 여학생들에게는 피부에 좋다는 알로에 음료가 인기다. 탄산음료는 그야말로 찬밥신세다.

학원 매점도 고물가 영향은 피해갈 수 없다. 500원에서 700원으로 가격이 뛴 아이스크림과 평균 1200원으로 가격이 오른 봉지과자는 예년에 비해 인기가 뚝 떨어졌다. 대신 ‘예감’ ‘칸쵸’ ‘아이비’ 등 1000원대 안팎의 상자과자는 진열대에 채워 넣기 바쁘게 팔린다. 커피도 500원짜리 ‘레쓰비’가 가장 잘 팔린다.

고물가가 매출에 영향을 준다고는 하지만 김 씨의 진짜 적은 ‘수능’이다. 8월 5일부로 수능이 100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매점 이용 학생이 눈에 띄게 줄기 시작한 것. 재수학원이라는 특성 때문에 학생들의 소비심리는 ‘수능’에 따라 춤을 춘다.

2, 3월에는 매점 이용 시간도 아깝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많기 때문에 매출도 크게 늘지 않는다. 하지만 긴장감이 누그러지기 시작하는 4월부터 매출액은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고, 더위가 시작되는 6, 7월엔 매년 최고 수준으로 올라간다. 반면 수능이 100일 앞으로 다가오는 8월부터는 매출액이 급격히 떨어지고, 9월엔 말 그대로 ‘파리 날린다’는 수준으로 하락한다. 김 씨는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시간마다 내려와 간식을 사먹던 학생들도 8월 말엔 얼굴 한번 구경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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