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고교化 심각” 지적논쟁 주도해야

  • 입력 2008년 1월 17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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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러스틴 예일大 교수 방한

“대학의 미래는 스스로의 위상을 제대로 설정하는 데 달렸다. 대학은 세계 체제의 변화 속에서 인식론적 논쟁,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서야 한다.”

‘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미국의 이매뉴얼 월러스틴(사진) 예일대 교수가 한국의 대학들에 ‘생존 비결’로 제시한 말이다. 근대 세계체제가 위기에 직면한 현 시점에서 대학이 적극적으로 인식론적 논쟁의 중심에 서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

월러스틴 교수는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이 ‘인문학의 혁신 방향과 대학의 역할’을 주제로 17, 18일 개최하는 학술대회에 참석해 ‘대학-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주제로 강연한다. 그는 미리 공개한 발제문에서 대학의 발전 역사와 오늘날 처한 상황을 점검하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세계체제의 변화가 대학에도 커다란 변화를 불러왔다고 주장했다. 특히 자본주의의 확장은 우선 대학 수를 크게 늘렸으며 학문을 점점 더 세분했다고 분석했다. 또 실생활에 유용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과학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인문학과 과학의 갈등이 심해졌다고 그는 지적한다. 과학 쪽으로 투자가 점점 더 집중됐다는 것.

월러스틴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수적으로 크게 늘어난 대학들은 1970년대 이후 세계 경제 침체기를 거치며 재정난에 직면했다. 그는 “대학들의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종교, 국가로부터의 자율권을 위해 싸웠던 대학들이 점점 더 국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처지가 됐다”고 지적했다.

학문적 관점에서는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연구가 점점 줄어든 것을 문제점의 하나로 거론했다. 교수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빼앗기면서 연구에 소홀하게 된 것이 그 이유. 이에 대해 월러스틴 교수는 오늘날 대학이 ‘고등학교화(化)’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대학이 미래에도 살아남을 것인가가 나의 관심사”라며 “대학이 인식론적, 정치적 논쟁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음으로써 그 입지를 굳히거나 아니면 이런 역할을 포기하고 무관한 길을 걷는 두 가지 방향이 모두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그는 “대학이 본연의 역할을 포기한다면 단지 취업을 위한 자격을 주는 기관, ‘어린 성인’들을 치열한 취업시장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보육기관으로 전락하는 고등학교화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라며 “대학이 빈사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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