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토마스 쿤,‘과학혁명의 구조’

  • 입력 2007년 12월 2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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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역사는 발전이 아니라

기존의 사고체계를 뒤집은

패러다임의 변혁 과정”

그럼, 결국 그 목적은 뭘까요

과학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다음과 같은 찰스 다윈의 글을 인용합니다.

“나는 이 책에서 제시된 견해들이 진리임을 확신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나의 견해와 정반대의 관점에서 보아 왔던 다수의 사실들로 머릿속이 꽉 채워진 노련한 자연사학자들이 이것을 믿어 주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본다. 편견 없이 이 문제의 양면을 모두 볼 수 있을 젊은 신진 자연사학자들에게 기대를 건다.”

다윈은 왜 이렇게 이야기했을까요? 토마스 쿤은 왜 이 이야기를 인용했을까요? 다윈은 지금까지 쌓아 왔던 모든 지식체계를 완전히 뒤바꾸는 학설을 발표했고, 그렇기 때문에 다윈 스스로 이 이야기를 과학자들이 잘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토마스 쿤은 다윈이 완전히 새로운 주장을 제시하면서 기존의 사고 틀을 뒤집었던 것처럼 과학이 발전해 왔다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어져 왔다고 주장합니다. 왜 ‘발전해 온’ 것이 아니고 ‘이어져 온’ 것인지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일단 다윈의 주장이 얼마나 새로운 것인지를 먼저 밝혀 보겠습니다.

다윈 이전에도 진화론과 비슷한 학설은 많았습니다. 그런데 다윈 이외의 학자들은 ‘생명체는 어떤 목적을 향해서 발전해 온 것이며, 어떤 미개한 존재가 인간으로 된 것 역시 발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윈이 그것은 ‘발전’이 아니고 순전히 ‘자연의 선택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혼란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다윈의 이론을 받아들이려면 생명체에 대한 개념 규정을 새로 해야 하고, 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인간의 정체성 또한 수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지동설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는데,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받아들이려면 단순히 ‘지구가 태양을 돈다’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와 태양과 우주에 대한 개념을 통째로 바꿔야 했습니다. 이것은 기존의 사고 체계에 심각한 위기를 불러일으키는 일이고, 그래서 과학자들은 웬만해선,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을 때까지 새로운 학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결코 바꾸기 어려운 이런 사고의 체계를 토마스 쿤은 ‘패러다임(paradigm)’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패러다임을 전환(shift)시킨 과학자들로는 다윈, 뉴턴, 아인슈타인,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등이 있는데, 이들은 과거의 어떤 학설에 자신의 학설을 덧붙인 것이 아니라 과거의 학설들을 완전히 부정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제시한 사람들입니다.

장기 게임을 예로 든다면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것은 ‘게임에서 이기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니라, ‘장기의 규칙을 통째로 바꾸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발전’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토마스 쿤이 말했듯이 발전이라는 것은 기존의 어떤 것을 더 개선시키는 일이고, 결국은 과거의 어떤 것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일인데, 패러다임의 전환은 전혀 새로운 이론을 등장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의 것과 전혀 연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과학은 발전하는 것이 아니고 계속 변환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토마스 쿤은 과학이 ‘발전이 아닌, 완전히 뒤바뀌는 혁명’을 거듭하는 구조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역사는 마치 계속 발전해 온 것처럼 포장되고, 과학 교과서는 이렇게 왜곡된 형태로 기술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지금까지 과학의 업적을 인정받을 수 있고, 젊은 과학도들이 더 열심히 공부하게 할 수 있으니까요. 과학이 발전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발전이 아니라는 사실’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겠군요.

토마스 쿤은 매우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전혀 해답을 제시해 주지 않습니다. ‘과학이 이렇게 패러다임의 전환을 거듭해 간다면, 과학의 목적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과거와 연결되지 않은 전혀 새로운 이론의 등장

이 과학사를 통째로 뒤바꾼다면 과학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패러다임이 전환 가능하다면 도대체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쿤은 이런 문제에 대해 ‘자신이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궁금하다면 그 답은 책을 읽을 여러분이 찾아야할 겁니다.

요즘 많은 사람이 ‘패러다임’이라는 꽤 정의하기 어려운 말을 마구 씁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낱말의 의미를 깊이 알아가는 것이 고전을 읽는 보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수봉 학림 필로소피 논술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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