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도 어민들 “육탄으로라도 기름띠 저지 하고 싶다”

  • 입력 2007년 12월 13일 19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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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안 좋아서 방제 작업하러 나온 배가 거의 없네요."

13일 오전 10시 반경 충남 태안군 안면도 해안에서 13km 서북쪽으로 떨어진 나치도 주변 해상. 3m 높이의 거친 파도 사이로 크고 작은 기름 덩어리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유조선 허베이스피릿 호와 삼성중공업 해상크레인선이 충돌한 사고 지점에서 동남쪽으로 약 35km나 떨어진 곳이지만 기름띠는 이미 여기까지 번져 있었다.

이 주변에 기름띠가 처음 나타난 것은 11일 오전. 이 지역 어민들은 12일부터 기름띠의 양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풍랑으로 방제 작업 더뎌져

이날 서해 지역에는 오후 1시를 기준으로 풍랑주의보가 발효됐다. 하지만 바다는 이미 오전부터 풍랑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기자가 동승한 충남도 해양수산과 소속 63톤급 어업 지도선인 '충남 295호'도 강한 북서풍과 높은 파도로 쉴 새 없이 휘청거렸다.

서낙원 승선관은 "날씨가 괜찮았던 11, 12일에는 30척 정도의 어선들이 나와 방제선들과 함께 기름띠를 거둬들이는 작업을 했다"며 "오늘은 날씨 때문에 방제작업에 차질이 생긴 것 같다"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강한 서북풍에 떠밀려 기름띠는 이미 안면도 근처에 많이 도달해 있었다.

가로림만과 함께 충남 최대의 양식장, 양어장 밀집 지역이며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인 천수만의 코앞까지 새까만 기름띠가 확산된 것이다.

하지만 이 주변 바다에서 방제작업을 벌이는 배는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청 소속의 250~500톤급의 대형 방제선 4척과 약 10톤 규모의 어선 한 척 정도였다.

대형 방제선은 쉴 새 없이 유화제와 물을 바다에 뿌리며 뭉친 기름띠를 흩트렸다.

파도로 심하게 흔들리는 작은 어선 위에서는 이 지역 어민과 자원봉사자들이 흡착포와 뜰채를 이용해 기름띠를 걷어내고 있었다.

해경 안면파출소 김정희 소장은 "날씨가 안 좋은데도 오전 8시 쯤 어선 7척이 주변 해역에 방제작업을 나갔지만 파도가 워낙 높고 바람이 세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 모두 귀항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어민들은 자신들의 생활 터전인 바다가 기름으로 오염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기름띠를 거둬내고 싶어 하지만 거친 날씨 때문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해경과 해수부 소속 방제선들도 100톤 급 이하의 작은 배들도 결국 낮 12시 경 방제작업을 포기하고 속속 항구로 돌아왔다.

●"육탄으로라도 기름띠 저지 하고 싶다"

천수만의 입구인 연육교 아래 바다에서도 기름띠 '방어 작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날 오후 연육교 위에는 방제 물품을 실은 트럭들이 속속 도착했다. 오전에는 다리 아래에 오일 펜스를 추가로 설치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어민들은 11일 쳐 놓은 250m짜리 오일펜스 외에도 이날 오전 250m짜리 오일펜스를 추가로 설치했다. 또 오후 3시 경에는 농작물의 햇볕을 가리는 차광막으로 어민들이 직접 제작한 오일펜스 2개를 더 쳤다.

다행히 이날 오후 4시경까지 오일펜스에는 기름띠가 거의 묻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아직까지 이 곳에 도달한 기름이 많지 않다는 뜻이었다.

안면도에서 35년째 바지락 양식장일을 하고 있는 김창웅(59) 씨는 "양식장, 양어장으로 먹고 사는 우리들에게 천수만은 생명이나 다름없다"이라며 "이 곳까지 기름띠가 들어오면 모든 게 끝난다"며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 지역에서 우럭 양어장을 운영하는 유형주(58)씨도 "내 자식 같은 물고기들이 폐사하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다"며 "내 몸을 던져서라도 기름띠를 막겠다"고 다짐했다.

태안=이세형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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