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영화, 생각의 보물창고]‘알포인트’

  • 입력 2007년 9월 10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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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볼 수 없는 자만이 전쟁에서 살아남는다?

《“하늘소, 하늘소. 여긴 당나귀 삼공. 우린 다 죽는다. 우린 다 죽는다….”듣기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공포영화 ‘알포인트(R-Point)’.

이 영화는 오래전 전멸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군 수색대로부터

이런 괴이한 무전연락이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수색대의 사망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문제의 지점 알포인트에 도착한 최태인 중위 일행은 악몽보다 끔찍한 현실과 맞닥뜨립니다.

영화 속에서 최 중위 일행이 목격하게 되는 귀신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귀신은 진정 존재했던 걸까요? 아니면 그들의 눈에만 보였던 환영(幻影·눈앞에 없는 것이 마치 있는 듯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을까요? 만약 환영이라면 그 환영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요?》

[1] 스토리라인

베트남전이 막바지에 이른 1972년. 최태인 중위(감우성)는 비밀 지령을 받습니다. ‘로미오 포인트’라는 작전지역에서 전원 사망한 한국군 수색대원 18명의 흔적을 확인하고 오라는 명령이었죠. 참으로 괴이하게도, 그들이 죽은 지 6개월이 지났건만 매일 밤 그들로부터는 이런 무전연락이 오는 겁니다. “우린 다 죽는다. 우린 다 죽는다.”

최 중위는 백전노장 진 중사(손병호)를 비롯한 8명의 대원을 이끌고 알포인트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최 중위 일행은 도착하자마자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한구석에 서 있는 비석에서 ‘손에 피를 묻힌 자는 돌아갈 수 없다’는 섬뜩한 글귀를 읽은 거죠. 대원들의 눈앞에는 죽은 것으로 알려진 수색대원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가 하면, 밤마다 최 중위는 제 손으로 죽였던 베트남 여인을 목격하죠.

급기야 대원들은 하나 둘 끔찍하게 목숨을 잃어가고, 무언가에 홀려 이성을 상실한 대원들은 서로에게 총과 칼을 들이대며 무자비한 살육을 자행합니다.

[2] 핵심 콕콕 찌르기

영화 ‘알포인트’를 ‘전설의 고향’ 수준의 귀신 얘기로만 보아서는 곤란합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귀신의 존재를 통해 이 영화는 궁극적으로 무슨 말을 전하려 하는 걸까?’

베트남은 어떤 곳인가요? 역사적으로 프랑스인 중국인 등 수많은 외지인이 침입했고 현지인들이 이에 대항해 싸우는 과정에서 수많은 죽음이 이어진 곳입니다. 알포인트를 지키고 있는 비석에 쓰인 비문은 그곳이 오랜 ‘죽음의 땅’이란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옛날 중국인들이 쳐들어와 많은 베트남인을 죽이고 호수에 묻었다. 그 호수를 메우고 사원을 세웠다. 너희들이 있는 그 자리엔 내가 있다.’

자, 여기서 문제. ‘너희들이 있는 자리엔 내가 있다’고 하는 비문 내용 속 ‘나’란 누구일까요? 바로 ‘죽음’입니다. 다시 말해 ‘너희들 곁엔 늘 죽음이 함께 있다’는 뜻이지요.

영화 속 장면들을 면밀하게 따져 보세요. 죽음과 삶, 죽은 자와 산 자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늘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부하와 함께 사창가에 간 최 중위가 그곳에서 여자 베트콩에게 무자비하게 사살당한 부하의 시체를 목격하는 도입부부터가 그렇습니다. 또 알포인트에 도착한 최 중위 일행은 이미 오래전 그곳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았던 한국군과 미군 그리고 프랑스인들의 환영과 만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렇듯 알포인트에선 삶과 죽음이 맞붙어 있습니다. 알포인트는 ‘죽음이 함께 있는 장소’이고, ‘죽은 자와 산 자가 공존하는 장소’이며, 심지어는 ‘삶과 죽음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한 지옥의 장소’입니다. 저주 같은 비문이 밝히고 있듯, “손에 피를 묻히는(살인을 하는)” 순간 이미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사람들의 영혼은 두 번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不歸)” 것입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요 죽어도 평안한 것이 아닌, 그런 진공의 공황(恐慌) 상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알포인트가 비단 베트남의 특정 작전지역을 일컫는 데 머무는 게 아니라 죽음의 기운이 압도하는 전쟁터 자체를 상징하는 공간이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 놓치면 안 될 중요한 설정이 있습니다. 최 중위 일행을 몰살시킨 장본인은 다름 아닌 그들 자신이었다는 점이죠. 대원들이 차례로 귀신에 씌어 동료를 무참히 살해하는 겉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사실 귀신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병사들의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었던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귀신이라는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그들을 다시 엄습해 왔을 뿐이지요.

그렇습니다. 전쟁의 공포는 ‘적(敵)’에게서 비롯되지 않습니다. ‘나 자신’ 때문에 일어납니다. 박 하사(이선균)의 마지막 한마디(“난 죽고 싶지 않아. 이렇게 죽으면 난 뭐가 돼. 내가 뭘 잘못을 했어?”)나 장 병장의 절규(“군번줄이 없으면 죽어서도 고향에 못 간대. 뼛가루라도 고향에 가야 하는데…”)가 암시하고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적보다 두려운 건, ‘헛되이 죽어 나 자신이 무의미한 존재로 잊혀질지도 모른다’는 병사들의 불안감이란 사실을…. 어쩌면 이것이 모든 전쟁이 갖는 죽음의 본질이요, 공포의 진원인지 모릅니다.

[3] 종횡무진 생각하기

이제야 답을 알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눈을 다친 병사들만이 기적적으로 살아남는 이유를 말이지요.

영화는 알포인트에서 6개월 전 떼죽음을 당한 수색대원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물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얼굴에 온통 붕대를 감고 있는 것으로 보아, 눈을 다쳐 앞을 볼 수 없었던 상황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최 중위의 부대원 중 유일하게 생존하는 장 병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역시 동료가 던진 수류탄에 눈을 다쳐 앞을 보지 못했죠.

앞을 볼 수 없는 자만이 전쟁터에서 살아남는다? 이런 역설적인 공식 속엔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 늘 죽음과 동무하는 전쟁터에선 살육의 끔찍한 모습을 눈에 담지 않는 자만이 ‘살육의 바이러스’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보는 만큼 두려워지고, 두려운 만큼 미쳐 가고, 또 미치는 만큼 죽어 가는 곳이 바로 전쟁터인가 봅니다.

이승재 기자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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