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때 신기남 前의장 부친에 취조 김장룡씨 건국포장

  • 입력 2007년 8월 1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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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지나간 과거지….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길밖에 더 있겠는가.”

일제강점기 당시 열린우리당 신기남 전 의장의 부친에게 취조를 받는 과정에서 고문을 당한 김장룡(81·부산 해운대구 반여동·사진) 씨가 제62주년 광복절 기념 독립유공자 포상자로 선정돼 15일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을 받는다.

본보 2004년 8월 18일자 A3면 참조
▶ [辛의장 부친 친일행적 파문]“辛의장 부친이 직접 고문”

김 씨는 13일 기자와 만나 “이 세상을 떠나기 전 항일운동의 경위라도 남겨야겠기에 2002년부터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신청을 했는데 이제야 인정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일제강점기에 누가 누구를 어떻게 했다고 하면 앙갚음과 보복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지 않느냐. 민족과 나라의 아픔이 계속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1943년 부산제2공립상업학교(현 부산상고)를 졸업한 김 씨는 일본 선생의 추천으로 1944년 3월 경남 진해 소재 일본 해군 제51항공창에 군속으로 취직했다.

이곳에서 비밀결사대를 조직해 극비리에 항일운동을 벌이던 김 씨는 그해 7월 한 동료의 밀고로 입창 동기 3명과 함께 일본 헌병대에 체포됐다.

당시 취조 담당자인 일본 헌병대 헌병군조(2등 상사급) 시게미쓰 구니오(重光國雄·일본창씨명·신 전 의장의 부친인 신상묵 씨)는 이들에게 한 달 이상 “배후를 밝혀라”라고 다그쳤다.

김 씨는 “시게미쓰가 직접 고문은 안 했지만 그의 지시를 받은 일본 헌병이 우물에 거꾸로 매달고, 옷을 벗긴 채 뾰족한 돌밭에 하루 종일 꿇어앉아 있게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당시 조사관이 ‘나는 한국인이다. 대구사범학교를 나왔다’고 해 한국 사람인 줄만 알았지 본명은 알 길이 없었다”며 “2004년 동아일보의 보도를 보고 시게미쓰 그 사람이 신 씨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1944년 12월 23일 진해 일본해군기지사령부 군법회의에 회부돼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다음 해 8월 15일 광복과 함께 출소했다. 이후 세브란스의대에 진학한 뒤 줄곧 부산진구 범천동에서 순천의원을 운영해 오다 2004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부산=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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