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新천재론]<14>멀티플레이어 꿈꾸는 수학천재 이해강 씨

  • 입력 2007년 6월 14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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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탠퍼드대에서 학·석사 통합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수학천재 이해강 씨. 그는 “하나에 몰두하기보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는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이해강 씨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학·석사 통합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수학천재 이해강 씨. 그는 “하나에 몰두하기보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는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이해강 씨
《이해강(21) 씨가 만약 숫자를 좋아하는 보통 젊은이라면 지금쯤 경제학이나 수학 중 하나만 선택해 공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스탠퍼드대 학·석사 통합과정 졸업반에 재학 중인 그는 학부과정으로 수학과 경제학을, 석사과정에서는 금융수학을 공부하는 특이한 학생이다. 금융수학은 이론에 기초한 수학과 실생활에 밀접한 경제학을 접목한 학문이다. 그는 서울 가원중학교를 2년 만에 조기 졸업하고 서울과학고에 진학했다. 중학교 2학년 때 한국수학올림피아드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수학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며 남들보다 1년 빨리 고등학생이 됐다. 과학고 2학년 때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출전해 은메달을 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각종 수학경시대회에서 상을 휩쓴 그는 2년 만에 고교를 조기 졸업했다.》

서울대 수학과에 입학했다가 2003년 9월 스탠퍼드대로 유학을 떠났다. 남들보다 빠른 출발은 더 많은 기회를 가져왔다. 여기까지의 과정은 다른 천재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는 수학에 재능을 보인다고 해서 한 가지에만 집중하지는 않았다. ‘영재는 한 가지에만 몰두한다’는 공식에서 그는 예외다. 오히려 그는 ‘수학천재’보다 ‘멀티플레이어’를 꿈꿨다. 그래서 문과계열의 경제학과 이과계열의 수학을 동시에 공부하고 있다. ‘숫자 마니아’ 이 씨는 “내게 수학은 공부하는 과목이 아니라 퍼즐게임”이라고 말했다.

● 퍼즐게임으로 놀면서 배운 수학

이 씨가 수학에 본격적으로 재능을 보인 것은 7세 때. 외아들인 그는 어울릴 형제가 없었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노는 일도 거의 없었다. 부모가 선물로 사준 숫자퍼즐게임을 하면서 숫자를 친구 삼았다.

“주어진 숫자 4개로 연산을 해서 24를 만드는 게임이었어요. ‘1, 2, 6, 9’가 주어지면 ‘(2×9×1)+6=24’로 맞춰 넣는 식이죠. 하루 종일 그 게임에만 매달리다 보니 문제가 금방 바닥나 버릴 정도였습니다.”

이 씨의 부모는 아들과 함께 생각하고 문제를 풀며 능력을 계발해 줬다. 어려운 연산을 해결하면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부모와 외출할 때면 거의 매일 네 자리 숫자로 이뤄진 자동차 번호판을 보고 ‘24 연산하기 놀이’를 했다.

초등학생이 된 뒤 산수를 교과목으로 배우면서 게임처럼 즐기던 연산은 꿈과 목표의 대상으로 이어졌다. 그는 4학년 때 전국 초·중학생 수학올림피아드에 출전해 학년별 부문 대상을 받았다. 이때 자신감을 얻었고, 대한수학회의 겨울학교 프로그램에 참가해 중학생들과 수업을 듣기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2002년에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출전해 은메달을 받았다. 국제무대에서 세계의 수학천재들과 겨뤄 우수한 성적을 거둔 것이다. 6년 동안 이 씨는 국내외 수학올림피아드와 경시대회에 40여 번 참가해서 입상하는 등 실력을 발휘했다.

“수학올림피아드의 문제 출제 유형은 어려운 수학 이론이나 공식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문제를 기발한 해법을 응용해 푸는 것입니다. 한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중요해요. 어렸을 적 연산놀이를 해결할 때처럼 말이죠.”

이 씨는 “문제가 잘 안 풀려 고민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아이디어가 떠올라 해결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3주 내내 한 문제만 붙잡고 씨름하다 결국 풀이법을 알아낼 정도로 집요한 면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담임교사가 조기 졸업과 과학고 입학을 권유해 고민에 빠졌다. 정든 친구들을 떠나 낯선 환경과 선배들 속에서 잘 견딜 수 있을지 걱정됐다. 이 씨는 “언젠가는 나와 다르고, 나보다 앞에 있는 사람들과 겨뤄야 한다는 생각에 조기 졸업을 결정했다”고 회상했다. 어렸을 때부터 ‘수학천재’보다 ‘멀티플레이어’가 꿈이었던 그는 과학고에 다니면서도 합창반과 기독교 동아리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숫자는 그의 성격도 바꿨다. 남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던 내성적인 성격은 각종 수학경시대회에서 우승을 거듭하며 자신만만하고 능동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 전교 부회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 ‘멀티플레이어’ 교육에서 찾은 재능

어머니 양정아(47) 씨는 이 씨가 어렸을 때부터 “앞으론 하나만 잘해선 안 된다.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한다. 부모는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다양한 경험을 쌓는 교육법을 택했다.

국어교사였던 아버지 이장훈(48) 씨는 틈만 나면 가족과 여행을 다녔다. 절에 가면 아들에게 건물이나 탑의 유래를 설명하고 등산할 때는 꽃을 보면서 그 구조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는 아이답지 않게 보채거나 뛰어다니지 않았다. 아버지의 자상한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눈에 보이는 것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봤다. 집에 돌아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감상문이나 시를 써서 그날의 기억을 ‘재생산’했다. 아버지는 그의 시를 엮어 시집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양 씨는 그가 아기일 때부터 “책을 밝혔다”고 한다. 말을 막 깨쳤을 때도 “책을 읽어 준다”고 하면 응석을 부리다가 멈출 정도였다. 서울과학고 재학 중에는 수학경시대회를 준비하느라 늘 바쁜데도 방과 후엔 도서관에 찾아가 과학 서적과 소설 등을 다양하게 읽었다.

부모는 어릴 적 배운 것이 평생 아이의 재산이라 생각하며 수영, 바둑, 피아노, 성악 등 여러 가지를 가르쳤다. 그러나 아이가 조금이라도 흥미를 느끼지 않으면 곧바로 그만두게 했다. 양 씨는 “감수성이 워낙 예민한 애라서 유치원 다닐 때도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들었다”며 “수학에 재능이 있을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7세 때 바둑을 배우면서 한 가지에 집중하고 몰두하는 모습을 처음 보였다. 학원에서는 한 달 만에 그의 급수를 4단계나 올리고, 강사가 부모를 찾아와 “프로 기사를 시켜 보라”며 권유하기까지 했다. 그는 날마다 서점을 찾아가 또래 아이들이 보는 만화책 대신 바둑잡지를 읽었다. 책에 나온 내용을 줄줄 외워 동네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클래식 음악도 즐겨 들었다. 유치원에 다닐 때 피아노에 관심을 보여 배웠고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색소폰과 재즈 피아노 연주를 익혔다.

수학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보인 이 씨는 “다원화 사회에선 관심 분야가 많을수록 시야가 넓어져 능력을 개발하기가 더 쉽다”며 “성적에만 치중한 경쟁 시스템보다 학생의 다양한 흥미와 능력을 존중하는 것이 미국 교육 시스템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금융수학 매력은요…”

‘멀티플레이어’를 지향하는 이해강 씨에게 금융수학은 문과와 이과가 적절히 조화를 이뤄 흥미를 더해주는 학문이다. 그는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개론’ 강의를 듣고 석사과정으로 이 과목을 택했다. 수학에 대한 관심이 실생활과 밀접한 경제학으로 연결된 것이다.

“통계학적 분석에 바탕을 두지만 수학이 논리를 중시하는 반면, 경제학과 금융은 사람과 사회라는 변동적인 요소가 추가되죠. 두 분야가 상호보완적이기 때문에 더 넓은 시야에서 수학을 공부할 수 있습니다.”

금융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새로운 금융상품이 등장하면서 메커니즘 분석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금융회사에서 기업이나 개인을 대상으로 대출할 때도 채무상환 능력을 수학이론과 통계로 분석해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이 씨는 “금융수학이 비교적 새로운 학문이지만 월스트리트 등 선진 금융업계에선 이미 여기에 근거해 투자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금융수학에 흥미를 느낄 수 있었던 이유로 평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점을 들었다. 수학을 좋아하지만 틈틈이 다른 분야의 책도 많이 읽고 친구나 선배 등 주위의 여러 사람과 만나 대화를 자주 나눴다.

“세상의 다른 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수학 한 가지만 알고 살았다면 금융수학의 재미를 몰랐을 거예요. 남들의 경험을 듣고 조언을 통해 새로운 길을 배우는 것은 책과 수학공식만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이해강은?

▽생년월일 1986년 8월 26일

▽학력 가원중 2학년 조기졸업(2000년), 서울과학고 2학년 조기졸업(2002년), 서울대 입학(2003년), 미국 스탠퍼드대 유학(2003년), 스탠퍼드대 학·석사 통합과정 졸업반(2007년)

▽가족관계 이장훈 양정아 씨의 외아들

▽입상경력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은메달(2002년), 초등학교 국

제수학올림피아드 세계최고상(1997, 1998년), 과학기술처장관

상(1998년), 한국수학올림피아드 중등부 대상(1999년), 한국수학

올림피아드 고등부 금상(2000, 2001년) 등 40여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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