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87주년]무엇이 그들을 ‘G’로 만들었는가

  • 입력 2007년 3월 3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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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더(Global Leader)’로 우뚝 선 최고경영자(CEO)들. 그들은 기업을 넘어 세계를 경영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리더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겐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통찰력이 있다. 그는 1993년 ‘질(質) 중시의 신경영’을 선언했다. 당시에는 삼성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조차 세계 2, 3류 기업에 머물러 있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 보자’는 신경영은 삼성전자를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휴대전화 디지털미디어 기업으로 변모시켰다. 삼성그룹이 1997년 외환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한 기반에는 ‘이건희의 통찰력’이 있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은 하버드대 2학년생이던 19세 때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을 위해 휴학계를 냈다. 이처럼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삶의 태도는 그를 글로벌 리더로 키운 창의성과 맞닿는다. 그는 시장에서 승리할 수 있다면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 미국 애플사 회장은 제품보다 ‘꿈’을 파는 글로벌 리더 CEO란 평가를 받는다. 잡스는 “나는 현재의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애플이 만든 것’을 바로 미래에 소비자들이 원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다소 괴팍한 성격으로 직원들의 화를 돋우곤 했지만 꿈과 문화의 창조자라는 존경을 받았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미래의 맥을 짚어 내는 혁신적 아이디어와 상상력은 마법 같은 중독성을 발휘해 사람들을 그에게로 이끈다.

통찰력… 창의력… 그들에겐 특별한 것이 있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은 지난해 불법 비자금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구속까지 됐다. 그 와중에도 계속 국내외의 현장을 챙겼다. 작업복과 작업모가 그의 ‘정장’이었다. 그렇게 축적된 현장 경영은 그의 결단력을 지탱해 준다. 품질 경영에 다걸기(올인)한 정 회장의 열정에 힘입어 세계 자동차시장 10위권 밖이던 현대·기아차는 6위까지 부상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글로벌 키워드는 ‘고객’이다. LG를 철저하게 고객가치 중심으로 탈바꿈시켜야 세계 시장이 인정하는 ‘글로벌 일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LG는 ‘소비자’ 대신 ‘고객’이란 말을 가장 앞장서서 써 왔다. 구 회장은 해외의 고객을 직접 만나러 2004년부터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세계 주요 전략지역을 해마다 방문하고 있다. 글로벌 초일류 기업들이 LG를 벤치마킹하게 만드는 것이 그의 고객 경영 목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글로벌리티(Globality)’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글로벌리티는 세계화의 정도나 글로벌 능력을 뜻하는 신조어. 최 회장은 지난해 11월 베트남에서 열린 CEO 세미나에서 “글로벌 경영은 위험(리스크)도 있지만 진화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설사 실패하더라도 책임을 묻기보다 그 성과를 인정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SK가 글로벌리티를 높인다면 한국을 위협하는 중국조차도 ‘기회의 나라’로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1969년 포스코(옛 포항제철) 공채 1기로 입사해 ‘한국의 대표 철강맨’이 된 이구택 포스코 회장에게는 섬세하면서도 강력한 추진력이 있다. 포스코가 인도에 연산 1200만 t 규모의 일관제철소를 건립하는 프로젝트는 지난해 본격 추진됐다. 하지만 이 회장이 신흥시장 인도를 뜯어보기 시작한 것은 수년 전부터다. 나비처럼 나는 듯하지만 ‘이때다’라고 느끼면 벌처럼 일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경북 영일만과 전남 광양만에서 이룬 ‘포스코 신화’를 베트남 중국 인도 등 세계무대에서 이룩할 수 있다고 이 회장은 말한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글로벌무대에서 리더로 활약하고 있다. 유엔한국협회 회장인 김 회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재계의 민간외교관’으로 불려 왔다. 특히 부친인 김종희 전 한화 회장이 한미친선협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구축한 미국 인맥을 이어 받은 ‘미국통’이다. 그의 친화력은 한국적 정(情)과 신의를 바탕으로 한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 때 그룹 계열사를 매각하면서 직원들의 고용 승계를 첫째 조건으로 내세웠다. 당시 그는 협상파트너에게 “직원들은 내 가족이다. 길거리로 나앉게 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역동성(Dynamism)은 2005년 3월 GS그룹 출범 이후 두드러진다. LG그룹과의 계열 분리 전에는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역할을 철저히 나누면서 드러나지 않는 경영 활동을 벌였다. GS그룹 출범 후에는 적극적인 대외 활동을 벌이면서 ‘젊고 역동적인’ GS그룹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계열사 CEO를 상대로 한 연례 회의에서 “성장하지 못하는 기업은 생존조차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은 과감한 도전정신의 소유자다. 그는 2004년 취임 직후부터 국내 시장을 벗어나 해외 시장을 개척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내수만 하던 기업이 다른 나라에서 사업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어렵기 때문에 더 도전할 가치가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SK텔레콤은 지난해 중국 정부와 중국식 3세대 이동통신(TD-SCDMA) 기술을 공동 개발하기로 하는 등 큰 성과를 거뒀다.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미국 시장에 진출해 기반을 잡은 것도 그의 도전정신 덕분이다.

글로벌 리더로서 조영주 KTF 사장의 덕목은 외유내강이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직원들의 생일까지 일일이 챙기고 직접 색소폰을 들고 ‘깜짝 공연’을 할 정도로 부드럽다. 그러나 사업은 전투로 여긴다. 그는 올해 신년사에서 “3세대 이동통신의 활성화와 주도권 확보를 위해 명량해전에서 13척의 배로 왜선 133척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이 되어 달라”고 당부했다. 조 사장은 이달 초 직접 가두캠페인에 나서는 등 솔선수범의 리더십을 보인다. 유럽형이동통신(GSM)협회의 이사를 맡아 글로벌 리더로서의 입지도 한층 강화됐다.

열정적 CEO의 상징인 잭 웰치 전 GE 회장은 ‘솔직하고 열린 커뮤니케이션’을 추구한다. 이것은 그의 열정을 성공으로 이어 주는 다리 역할을 했다. 자서전에서 표현한 ‘무지막지할 정도의’ 솔직함은 깨끗한 도덕성을 낳았다. 경쟁사 정부 등 이해관계자들과도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 줬다. 세계의 투자자들에게도 ‘잭 웰치의 GE는 솔직한 기업’이란 인상을 심어 줬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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