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찾아와 “대선필승 비책있다” 직거래 요구

  • 입력 2007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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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캠프의 정책자문단에서 주요 역할을 맡고 있는 A 교수는 “두 달 전부터 주변 교수들에게서 자문단에 넣어 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고 있다”고 말했다. A 교수는 “해외 유학 시절 한두 번 인사한 적이 있는 교수들이 최근 연락을 해 와 자문단 참여와 관련해 이것저것을 물어 당황했던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한나라당 유력 대선주자 캠프는 이미 올해 초 정책자문단과 전국 각 지역 포럼 결성을 공식 발표했음에도 자문단에서 일하고 싶다는 교수들이 쇄도하고 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측과 박 전 대표 측은 “교수들이 불쑥 찾아와 ‘캠프에 상주하면서 일하게 해 달라’ ‘후보를 직접 만나게 해 달라’ 등의 요구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찾아오는 교수들은 주로 지역 국회의원이 소개를 해 주거나, 아는 사람이 중간에서 캠프와 다리를 놔준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직 공식적으로 캠프를 열지는 않았지만 범여권 대선주자 진영에도 교수들은 찾아온다. 2월 말부터 전국 민생체험을 다녔던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의 경우 주요 도시에 갈 때마다 매번 그 지역 대학교수 한두 명이 찾아왔다고 한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의장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도 수도권 대학은 물론 적지 않은 지방대와 전문대 교수들이 “의장님을 꼭 뵈어야 한다”며 한 달에 서너 번꼴로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 이들은 ‘이것만 하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며 자신의 정책보고서를 내놓는다. 개헌과 재정 문제 등에서부터 ‘친일잔재청산특별법 제정’까지 다양한 문건을 제시하지만 김 전 의장을 만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선주자와의 면담을 요청하는 이들 중에는 이미 대선주자의 외곽지역 포럼에서 활동하는 교수도 있다. 자문 교수 중 ‘원 오브 뎀(one of them·여럿 중 하나)’에 머물고 싶지 않기 때문에 ‘직거래’를 하러 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폴리페서 러시 현상에 대해 각 캠프의 반응은 싸늘하다. 한나라당 유력 대선주자 캠프 관계자는 “솔직히 요즘은 무작정 달려드는 교수들이 공해라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여권 대선주자 진영의 한 보좌관은 “2002년 대선 때 한 여권 후보의 캠프를 지원한 교수가 100명을 넘었다고 했다”면서 “그러나 당시 대단한 공약이 나왔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고 말했다. 폴리페서의 ‘수’보다 그들이 내는 아이디어의 ‘질’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최근 한 지방대 B 겸임교수가 이 전 시장 캠프를 찾아 “대선 필승의 비법이 있다”며 대선주자를 만나겠다고 졸랐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온 문건은 16대 대선 관련 통계자료를 기초로 한 상식적인 내용에 불과했다. A4용지 수백 장의 자료를 들고 찾아와 무작정 대선주자를 만나게 해 달라는 교수도 있다고 했다.

다른 지방대 C 교수는 박 전 대표 캠프를 찾아와서는 “나는 이회창 전 총재의 선거를 전담한 핵심 멤버다. 모든 것을 나한테 맡겨 달라”고 주장했다. C 교수는 이 주장이 먹혀들지 않자 두툼한 정책보고서를 들고 다시 왔다. 그래도 캠프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나중에는 “상대 후보를 돕겠다”고 어깃장을 놓고 돌아갔다.

폴리페서가 몰리다 보니 다양한 모습이 나타난다. 한나라당 유력 주자 진영의 한 인사는 이런 폴리페서들을 ‘막무가내형’ ‘보따리형’ ‘네거티브형’ ‘양다리형’으로 구분했다.

“꼭 후보를 직접 만나야 한다. 만나면 대통령이 되는 비책을 전달하겠다”는 식이 막무가내형이다. 보따리형은 함량 부족의 자료를 잔뜩 싸 들고 와서 시위를 한다는 것.

네거티브형은 “나를 받아주지 않으면 상대 후보 측으로 가겠다”거나 심지어 “상대 후보의 비리를 안다”며 접근한다. 양다리형은 여러 대선주자 캠프를 기웃거리며 여기저기에 보고서를 제출한다. 언론에는 한 후보의 자문교수로 보도됐지만 실상은 다른 후보 쪽에서 일하는 교수도 있다는 것.

대선 캠프 쪽에서는 무작정 찾아오는 폴리페서들에게 “기다려 달라”거나 “감사하다. 마음은 잘 받겠다”며 돌려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때로 캠프에서 “생각하는 것을 정리해 오면 후보와 만나서 얘기하는 자리를 만들겠다”고 하면 그 다음에는 연락이 없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결국 어떻게든 후보를 만나 ‘눈도장’을 찍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대선주자 캠프 내의 영입 필요성에 따라 유능한 교수를 ‘모셔 오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정 전 의장 진영 관계자는 “실력 있고 자존심 강한 교수는 잘 오지 않으려 하고, 실력이 부족한 교수들은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역설적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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