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인혁당 사건' 항소여부 고민

  • 입력 2007년 1월 24일 16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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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에서 고(故) 우홍선 씨 등 8명에게 무죄가 선고된 가운데 검찰이 항소 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안창호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24일 "판결문을 받아보고 여러 사안을 고려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이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유신정권'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위법한 수사·재판의 희생양이 된 이들의 명예가 32년 만에 회복된 마당에 또다시 검찰이 항소할 경우 고인과 유가족의 고통이 그만큼 연장되기 때문이다.

회한과 인내로 30년 넘는 세월을 버텨 온 유가족들이지만 또 한 번의 송사는 대법원 판결 하루 만에 가족을 형장의 이슬로 보낸 뒤 힘겹게 무죄 판결을 받은 터여서 참기 어려운 큰 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국가정보원 등도 이 사건에 대해 잇따라 당시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사건이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어 관련 시민단체와 여론이 반발할 것이 뻔해 7일 이내에 항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검찰을 부담스럽게 하고 있다.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해 작년 12월18일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면서 이례적으로 구형 없는 논고를 했었다.

그러나 이 사건과 관련해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이 진행되고 있고 국가배상을 청구할 가능성도 있어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리기 위해서는 상급심의 '확실한' 판단을 받아봐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검찰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유가족이 개별 불법 행위자의 책임을 물은 게 아니라 국가에 포괄적인 책임을 지운 것인 만큼 나중에 국가가 당시 재판부나 공안당국 관련자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하거나 유가족이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낼 경우, 또 나머지 징역형을 받았던 피고인이 같은 취지로 소송을 제기할 경우 1심 판결로는 기속력이 없어 상급심이 체계적인 법리 판단을 해 분명한 '잣대'를 제시해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사법살인'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사법부가 뒤늦게나마 과거의 오점을 완전히 털어버리기 위해서는 하급심의 '판결'이 아니라 대법원의 '판례'를 세워야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똑같은 공판조서에 대해 과거 대법원이 증거능력을 인정해 유죄 판결을 내린 반면 재심이기는 하지만 1심이 증거능력이 없다며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은 상급심 결정을 하급심이 뒤집은 형국이어서 사법부가 '과거'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용훈 대법원장도 인혁당 사건 등 적정한 사건이 대법원에 상고되면 전원합의체에서 무죄 취지로 판결해 새 판례를 확립하는 식으로 과거사를 청산하겠다는 구상을 몇 차례 언론 등을 통해 밝혔었다.

특히 이번 사건처럼 과거 유죄 판결이 내려진 뒤 증거 조작, 고문 등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무죄 등으로 재조명된 유사 사건이 쌓여 있어 국가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배상을 청구할 시효도 상급심이 판단해줘야 한다.

서울고법이 작년 2월 '의문사 1호'인 고 최종길 교수 유족에게 거액의 배상판결을 내리면서 "배상청구 시효는 소멸했으나 의문사위가 관련 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까지는 유족으로서도 진상을 몰랐다고 봐야 한다"고 나름대로 정의를 내렸지만 이 판결도 항소심 단계에서 끝나 대법원 확정 판례가 없다는 점에서 여전히 소멸시효에 대한 논란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김동원기자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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