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대법원장 “‘10원이라도’ 발언 당시엔 누락 몰랐다”

  • 입력 2007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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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탈루 의혹을 받고 있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4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로 출근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 대법원장은 이날 대법원 청사 11층 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속인 일이 없다”고 해명했다. 김재명 기자
세금 탈루 의혹을 받고 있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4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로 출근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 대법원장은 이날 대법원 청사 11층 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속인 일이 없다”고 해명했다. 김재명 기자
이용훈 대법원장은 4일 자신이 변호사 시절 수임료 5000만 원의 신고를 누락한 것과 관련해 “세무사 사무실에 낸 수임명세서에는 자문료로 받은 30만 원까지 다 적어 넣었다”며 “신앙인으로서 속인 일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 대법원장은 세금 납부 이후에도 신고 누락 파문이 가라앉지 않자 이날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사법부 수장이라면 사생활까지 포함해 무한대 검증을 받아야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언론에 대해) 솔직히 섭섭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법원장은 2003년 4월 ㈜진로의 주채권자였던 미국 증권사 골드만삭스가 ㈜진로를 법정관리 신청한 사건을 수임해 8차례에 걸쳐 2억5000만 원을 받았으며, 이 중 5000만 원을 세무당국에 신고하는 과정에서 누락했다. 이 대법원장은 사실을 확인한 3일 관할 세무서에 종합소득세 등 2771만 원을 뒤늦게 납부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지난해 11월 ‘10원이라도 탈세했다면 직(職)을 버리겠다’고 했는데….

“그때까지는 (누락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한 것이다. 속인 일이 없기 때문에 8번에 걸쳐서 돈 받은 명세서를 다 (언론사에) 줬다. 명세서가 잘못된 걸 알았다면 그걸 넘겨줄 리가 있었겠나.”

―변호사 사무실에서 작성한 수임명세서와 세무사 사무실이 세무서에 신고한 자료를 공개할 수 있나.

“세무사가 신고한 부분은 곧 자료를 넘겨받으려고 한다. 원 자료는 전부 세무서에 보여 줬다. 관할 세무서에도 전혀 관심 없다는 취지로 끝난 일로 알고 있더라. 내가 어떻게 돈을 관리했는지 통장을 보여 줄 수도 있다.”

―3일 해명자료에서 국민에게 유감이라고 했는데….

“세무사 직원한테 잘못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고 지금 와서 그렇게 한들 무슨 소득이 되겠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진로 법정관리 사건을 의뢰한 골드만삭스에 대해 투기 자본 논란이 있었는데 사건 수임 경위는….

“투기 자본이라고 생각해 세 번이나 거절하자 그쪽에서 ‘외국 자본이라고 차별하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 당시 외환위기가 다 끝난 게 아니어서 나라를 위한다는 생각도 했고, 대한민국 법조계가 외국 자본에 대해 공정하게 사건을 처리한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8차례 수임료 등을 지급받을 때 5차례는 골드만삭스의 계열사인 세나인베스트먼트에서 받은 걸로 돼 있다. 이 회사가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라는 얘기도 있었는데….

“그 사실은 몰랐다. 나중에 골드만삭스에서 만든 아일랜드에 있는 회사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 사건을 맡은 게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나라를 위해 맡는 것이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세무서 소득신고 자료는 누군가 협조해 주지 않으면 유출되기 어려운데….

“사법부 수장쯤 되는 공직자는 사생활까지 포함해서 무한대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방식으로 그런 자료를 얻었건 탓할 생각이 없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섭섭하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정치권 법조계 “단순 실수라해도 뒷맛 개운찮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자신의 수임료 신고 누락 파문에 4일 직접 해명하고 나섰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이 대법원장이 지난해 11월 초 “세금을 10원이라도 탈세했다면 직(職)을 버리겠다”고 했던 자신의 발언 때문이다.

이날 이 대법원장이 “그 발언을 할 때에는 누락 사실을 몰랐다”고 말한 것도 이번 사안이 자신의 거취와 연결지을 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실제로 법조계 내에서는 이번 사안을 고의적인 탈세로 보기는 어렵지 않으냐는 견해가 많다. 법원과 갈등을 빚고 있는 검찰 측 고위관계자도 “세금을 많이 내다보면 실수해서 누락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단순 신고 누락은 처벌 대상이 안 되고 세금 추징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한변호사협회는 논평을 통해 “탈세인지, 과오에 의한 신고 누락인지 분간이 어렵다”며 “신고 누락이라는 변명을 수용한다 해도 과연 이 같은 거액의 신고 누락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명확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일단 정확한 사실 관계 규명을 촉구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열린우리당 간사인 이상민 의원은 “일단 사실관계를 조사해 고의성 여부를 명확히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나라당 유기준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뒷맛이 개운치 않다. 국민의 모범이 돼야 하는 대법원장으로서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민주당 조순형 의원은 “도덕성과 청렴성을 강조해온 사법부 수장으로서 큰 도덕적 흠결을 안게 됐다”고 지적했다.

검사 출신인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 대법원장은 자기 약속대로 한다면 (대법원장직을) 나오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이 대법원장이 변호사 시절 수임했던 472건 중 대법관 출신으로서 맡기에 적절하지 않은 사건이 있었다는 지적도 다시 일고 있다. 이 대법원장은 이미 지난해 11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입 사건 수사 때 변호사 시절 외환은행 관련 사건을 수임한 것 때문에 논란을 빚었다.

법조계 일각에선 기존 법조계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는 이 대법원장에 대한 음해설도 제기되고 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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