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30만원’ 노숙자 경비원의 퇴직금 공방

  • 입력 2006년 11월 27일 16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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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오후 노동부 관악지청. 두 남자가 젊은 근로감독관을 상대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어가며 진지하게 얘기를 하고 있다. 옆에는 노무사들이 앉아 그들의 말을 거든다.

두 남자는 서울시 금천구 C복지관 직원과 노숙자 A(55)씨. A씨는 지난 2년4개월간 C복지관 노숙자 쉼터에서 생활하며 야간경비를 서주고 월 30만원씩을 받아왔다. 하지만 적은 월급에 혹사당한다고 생각해오던 A씨는 이달 초 노무사를 찾아 억울함을 호소했다. 노무사는 곧바로 복지관에 대해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노동부에 고발했다. 이날 노동부의 첫 면담조사가 진행됐지만 양측의 주장은 팽팽히 맞섰다.

복지관은 A씨의 경비 일은 노숙자 재활프로그램의 하나로 일반 노동자처럼 최저임금제를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A씨는 근로계약서를 썼고 성실하게 일했으니 2년4개월간의 최저임금과 퇴직금, 각종수당(약 5000만원)을 달라고 주장했다.

◇A씨 “노예처럼 부려먹고…” = A씨는 지난 2004년 5월 C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노숙자 쉼터에 입소했다. 그는 몇 년 전 공사장에서 미장일을 하다 허리를 다쳐 일을 못하게 되자 쌓여 가는 빚더미에 그만 거리로 내몰리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쉼터까지 오게 된 그는 깔끔한 용모와 성실한 태도로 입소 직후부터 월 30만원씩 받기로 하고 복지관 야간경비 일을 맡게 됐다. 이전 노숙자도 같은 금액을 받고 일했다는 복지관 관계자의 말에 군말 없이 근로계약서에 서명했다고 한다.

A씨에 따르면 그는 하루도 쉬지 않고 오후 6시부터 다음날 9시까지 문단속, 전기점검, 2시간 마다 순찰, 아침청소 등의 일을 했다. 성실함을 인정받아 구청에서 배당하는 공공근로자에도 뽑혔다. 공공근로가 있는 날이면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복지관 내에서 청소, 가지치기 등 환경미화 일을 하고 월 60만원을 구청으로부터 받았다.

2005년부터는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속셈 영어 미술 학원의 운전기사로도 1년을 일했다. 대형면허를 가지고 있는 A씨에게 복지관에서 오후에 짬을 내 운전을 해달라고 한 것. 전임 운전사와 후임 운전기사는 월 80만원을 받았지만, A씨에게는 경비 월급과 별도로 30만원을 줬다.

A씨 측 이OO 노무사는 근로계약서가 있는 경비의 경우 오후 6시부터 오전 9시까지 하루 13시간(식사 시간 2시간 제외)씩 일했으니, 최저임금으로 계산할 때 2년4개월 간 1024만5000원이 미지급 됐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야근수당, 휴일수당, 퇴직금 500만원을 합치면 받아야 할 금액은 5000만원이 넘는다.

A씨는 “일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복지관에서 24시간 일했다”며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운전기사 일은 거론하지 않겠으니, 경비를 하다 못 받은 임금과 퇴직금만이라도 달라”고 요구했다.

이 노무사는 “A씨가 쉼터에서 산다고 하지만 야간경비에 아침청소를 시키고 안 하면 질책까지 하면서 30만원을 준다는 게 도의적으로 말이 되느냐”며 “구청도 이런 사실을 몰랐다니 감독 소홀의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근로계약서가 있고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왔다. 정당한 노동자라고 봐야한다”며 “문제가 되자 복지관에서는 사전에 말도 없이 퇴직금조로 통장에 60만원을 입금했다. 이는 노동자로 인정했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복지관 “쉼터에서 먹여주고 재워줬는데…” = C복지관의 주장은 달랐다. 복지관측에 따르면 A씨에게 경비 일을 시킨 것은 재활프로그램 차원이며, 대가조로 준 30만원도 많다. 어차피 복지관 쉼터에서 잠을 자면서 자기 집을 지키는 일을 한 것일 뿐인데 무슨 최저임금에 퇴직금까지 요구하느냐고 했다.

더욱이 지난해 복지관에 도둑이 든 이후로는 600여만 원을 들여 사설 보안시스템까지 설치했지만, 이 때도 A씨에게 책임을 물리지 않았으며 경비 일도 계속시켰다. A씨는 형식상 경비였으나 실질적으로 하는 일은 열쇠를 받아 밤사이 보관하는 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복지관 김OO 복지사는 “A씨가 자활 의지가 강하고 열심히 일하려 했던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그러나 갈 데가 없어 복지관 내 쉼터에서 먹고 자는 사람인데, 365일 일만 했다니 말도 안 된다. 그를 경비로 인정했으면 고가의 보안장치를 따로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한 그는 “공공근로 60만원에 운전사 30만원, 야간경비 30만원이면 도합 120만원”이라며 “재활프로그램이 아니라면 A씨에게 줄 돈으로 신원 보증되고 신체 건강한 복지사를 한 명 더 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복지사는 “빠듯한 복지관 예산상 A씨에게 경비 대가로 준 30만원도 복지관 식당 식대를 모아서 겨우 마련했다”며 “이곳 복지사도 120~13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 상황에서 A씨에게 최저임금을 보장할 여건이 못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담당 권OO 근로감독관은 “A씨의 사례는 특수하고 애매한 상황”이라며 “감독관 재량으로 단숨에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다”며 판단을 보류했다.

그는 “근로계약서를 써서 근로자로 볼 수도 있는데 이럴 경우 일자리를 만들어 주었다고 해도 법대로 돈을 주지 않았다면 문제가 된다”며 “그러나 복지관에서 좋은 뜻으로 노숙자를 쓴 것이니, 양측이 합의를 하는 게 맞을 듯”이라고 말했다.

양측은 27일 현재까지 전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노동부는 2~3개월 가량 더 조사를 벌인 후 결론을 내린다는 입장이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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