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명품 판매원으로 일해보니 “쉿! 진짜는 딴데 있어요”

  • 입력 2006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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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단속 떴어요.” 바로 앞 매장에 있던 직원이 귓속말로 얘기했다. ‘짝퉁(가짜 상품이란 뜻의 속어)’ 명품 시계를 사려던 손님과의 흥정이 마무리될 무렵 날아온 소식이라 놀랄 만도 한데 짝퉁 명품 매장 주인 이시영(가명·26) 씨는 무표정했다. 이 씨는 루이비통, 오메가 등 짝퉁 시계 50여 개가 담긴 가방 2개를 재빠르게 정리하더니 바로 직원에게 전달했다. 직원은 익숙하다는 듯 가방을 들고 아래층 어디론가 사라졌다. 손님도 무엇인가 안다는 듯 자신이 고른 시계를 케이스에 집어넣고 지갑에서 수표 두 장과 만 원짜리 7장을 꺼내 이 씨에게 건넸다.》

지난달 29일 오전 1시 서울 동대문시장의 한 종합패션쇼핑몰 짝퉁 명품 매장. 단속반이 왔다는 소문이 층 전체에 퍼졌는지 매장 직원들이 여기저기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몇몇은 매장 앞 명품 사진들이 쭉 나열돼 있는 카탈로그를 매장 안 서랍으로 치웠다.

나머지 직원들은 짝퉁 제품이 담겨 있는 여행가방을 들고 위층, 아래층으로 비상계단을 통해 오르내렸다.

이 씨는 “쇼핑몰 1층서 단속반이 왔다고 연락해 주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는 것”이라며 “지금 다들 지하주차장이나 다른 보세 가게, 매장 안 비밀 서랍에 숨기느라 바쁠 것”이라고 말했다.

2002년경부터 검찰과 경찰, 관세청이 대대적으로 짝퉁에 대한 단속을 시작했다. 하지만 짝퉁 제품은 시장이 다소 침체되기만 했을 뿐 사라지지 않고 있다.

취재기자는 지난달 27, 28일 이틀 동안 동대문시장 종합패션쇼핑몰 짝퉁 명품 매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일하면서 짝퉁 시장의 생명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지켜봤다.

기자가 본 짝퉁 판매 현장은 단속이 강화되면서 시장이 많이 침체되긴 했지만 인터넷으로 판매망을 넓히는 한편 판매 방식은 점점 교묘해지고 있었다.

9년째 짝퉁 장사를 하고 있다는 강현수(가명·28) 씨는 “5년 전엔 주말 장사로만 500만 원을 벌었다”며 “그땐 매장에 짝퉁 제품을 그냥 진열해 놓고 팔았는데 2년여 전부터 단속이 심해져 이제 진열은 싸구려 보세품으로 한다”고 말했다.

짝퉁 매장에 진열된 보세품은 판매용이 아닌 눈가림용이고 짝퉁은 다른 곳에 숨겨 두고 카탈로그만 내놓는 것.

손님이 이를 보고 물품을 고르면 상인은 ‘되돌이 집’(상인들 사이의 은어로, 짝퉁을 실제 소유하고 있는 집)에서 물건을 가져와 판매한다.

기자가 찾았던 쇼핑몰 한 층에서 짝퉁 명품을 취급하는 곳은 40여 곳. 이 중 실제 짝퉁을 갖고 있는 ‘되돌이 집’은 서너 곳 정도였다.

되돌이 집은 공장에서 물건을 떼어 소매상에게 갖다 주는 중개상의 물건을 받아 매장 안의 비밀 서랍이나 여행가방, 자동차 등에 넣어 두었다가 구입 의사가 확실한 손님에게만 보여 준다.

보통 짝퉁 값은 유통단계를 거칠 때마다 2배씩 뛴다.

되돌이 집은 중간상에게서 3만 원에 물건을 떼 와 여기에 5만∼10만 원을 얹어 일반 짝퉁 매장에 물건을 넘긴다.

물건을 되돌이 집에서 가져온 가게에선 떼어 온 가격의 2∼5배 이문을 남기고 손님에게 물건을 판매한다.

같은 물건도 손님의 인상착의에 따라 값이 천양지차다. 어수룩해 보이거나 뜨내기손님으로 보이면 직원은 5배씩 얹어 팔고 짝퉁에 대해 좀 아는 손님과 단골에겐 2배 정도 이문만 남기고 판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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