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문용린]달려가는 도쿄大, 뒤로 가는 서울大

  • 입력 2006년 9월 23일 03시 04분


코멘트
3년 만에 그런 변화를 이루어 냈다니 놀랍기만 하다. 도쿄대가 일본 최대의 신용평가기관인 R&I로부터 최고에 해당하는 AAA등급을 받았다. 세계적 초일류기업으로 평가받는 도요타자동차와 나란히 말이다.

최고등급의 신용평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 가지 큰 변화가 예상된다.

우선 도쿄대는 이런 신용을 바탕으로 가장 낮은 금리의 금융 지원과 채권 발행을 통해 대학 발전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 둘째, 풍부한 재원은 국내외에서 최고 수준의 교수와 연구 인력을 모여들게 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연구시설을 구비하게 만든다. 셋째로 풍부한 재원과 우수한 교수 인력 및 시설은 질적으로 우수한 신입생의 유치를 훨씬 가속화시킨다. 일본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 특히 인도 중국 등의 우수한 아시아 엘리트가 대거 모여들 것이다. 이런 변화는 일본의 힘을 키우는 가장 핵심적인 인적 자원의 댐으로 도쿄대를 변모시킬 전망이다.

도쿄대 변화의 결정적 계기는 무엇인가? 많은 이가 2004년의 대학 법인화 조치를 꼽는다. 고미야마 히로시 총장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법인화로 달라진 점은 자율이다. 법인화 전에는 학생기숙사 하나도 문부과학성에 신청해서 허가를 받아야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학이 시장에서 자금을 조성해 기숙사를 지을 수 있다. 도쿄대가 세계 최고의 대학이 되기 위한 환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도쿄대를 일본 정부의 보호와 간섭에서 떼어 내 자유로운 법인으로 만든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도쿄대 법인화 조치가 개혁의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서울대 폐지론의 여운이 짙게 감도는 한국의 상황에서 볼 때, 도쿄대의 변신은 그저 놀랍게만 보인다. 지적 엘리트의 개발과 육성을 국가 경쟁력의 필수요소로 보지 않고 균등과 평등을 해치는 부정적 요소로 파악하는 이데올로기적 단순성을 극복한 모습이 엿보인다.

역사발전의 많은 예에서 보듯이 대학은 문명과 국가, 사회 발전의 핵심 센터 역할을 해 왔다. 세계 최고로 꼽는 미국과 핀란드의 경쟁력은 대학에서 연유한다. 그들 나라의 대학이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까닭은 평준화된 동질의 대학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 선두의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줄기차게 선의의 경쟁에 몰입하는 대학이 많기 때문이다. 대학이 경쟁력을 갖게끔 유도하는 고등교육정책이 세계 모든 국가의 중요한 발전전략이 된다.

대학이 마음껏 경쟁하여 선두 자리를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도록 큰 멍석을 깔아 주는 일이 대학정책의 큰 그림이 되어야 한다. 큰 그림이 한국에서는 왜 잘 그려지지 못하는가? 대학에 얹어 놓은 과도한 이데올로기적인 짐 때문이다. 대학을 소질과 적성 그리고 잠재능력을 마음껏 개발하고 연마하는 인적 자원 육성의 장으로 보지 않고, 사회적 평등과 균등을 조절하는 사회정책의 한 수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서울대 폐지론의 언저리에 칩거해 있는 어두운 시각이 후자의 입장이다. 인적 자원을 제대로 육성하는가 하는 차원에서 서울대를 바라다보기보다는 입학생의 빈부 차, 지역 차이에 주목해서 사회적 평등 해소에 기여하지 못하고 졸업생이 사회적 혜택을 독점한다는 비판에 더 주목한다.

특정 대학의 폐지를 전제로 하는 대학 개혁 논의보다는 좋은 대학을 더 많이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긍정적 대학 개혁관이 중요하다. 일본 정부가 도쿄대 폐지론의 긴 터널에서 벗어나 더 좋은 도쿄대 쪽으로 발상의 전환을 이룬 결과, 3년 만에 이룬 혁혁한 개혁 성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용린 서울대 교수·교육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