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점 비켜! 도깨비시장의 반란

  • 입력 2006년 5월 10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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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도 죽으라는 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8일 오후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도깨비시장에 ‘반짝 세일’이 열리자 주부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박영대 기자
재래시장도 죽으라는 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8일 오후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도깨비시장에 ‘반짝 세일’이 열리자 주부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박영대 기자
“자∼오늘의 ‘반짝’ 세일. 싱싱한 오이가 10개에 1000원, 호박도 3개 1000원. 시간이 없어요….”

이날은 여천상회 차례였다.

야채가게 아줌마는 오이 상자를 좌판에 무더기로 꺼내 놓고 손님을 끌기 시작했다. 10개에 1000원이면 정말 싼값이다. 유난히 무더운 날씨였지만 이내 가게 앞은 주부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반짝 세일은 이곳 장터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언제 어느 가게에서 세일을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주부들도 ‘오늘은 뭘 싸게 살 수 있을까’ 행복한 상상을 하며 시장을 찾는다.

‘여천집’은 오이 10상자, 호박 12상자를 그 자리에서 팔아 치웠다. 불과 10분 만이었다. 물건이 동난 뒤 허겁지겁 달려 온 주부들은 못내 아쉽다는 표정이다.

“자자…오이는 여기도 있어요.” 인근 가게 주인이 환하게 웃으며 남은 손님들을 맞는다. 곳곳에서 정말 ‘옛날 시장’ 냄새가 났다.

○ 위기에 맞서다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도깨비시장’은 점포가 100개도 채 안 되는 조그만 재래시장이다. 1980년대부터 상인들이 공무원의 단속을 피해 저녁에 2시간만 반짝 장사를 했다고 해서 ‘도깨비’란 이름이 붙었다.

위기는 순식간에 닥쳤다. 외환위기 직후 반경 2km 안에 대형 할인점이 4군데나 잇따라 들어서면서 손님이 급감했다.

점포들은 임대료를 감당 못하고 줄줄이 망해 나갔다. 상인들은 둘러앉아 술을 마시거나 우두커니 서서 지나가는 사람 수 세는 것을 취미로 삼았다.

“이러다 다 죽겠다.”

상인들은 뭉치기 시작했다.

○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뭐냐”

이들은 2003년 도봉구청에 환경개선사업을 요청했다. 시장 골목에는 대형 아케이드가 설치되고 내부 도로도 깨끗이 포장해 제법 현대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손님은 여전히 늘지 않았다. 뭔가 다른 비책이 필요했다.

이듬해인 2004년 시장번영회는 상인들을 상대로 ‘시장 살리기 아이디어’를 받았다.

많은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매달 하루를 도깨비의 날로 지정해 세일 행사를 하자’, ‘우리도 할인점처럼 주민들에게 전단을 배포하자’는 아이디어가 채택됐다.

괜히 쓸데없이 돈만 쓴다며 반대하는 상인도 있었다. 하지만 곧 “할인점이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는 여론이 앞섰다. 더군다나 이들에겐 더 잃을 것도 없었다.

○ 할인점을 누르다

난생처음 재래시장의 세일 광고를 접한 주부들은 하나 둘 시장으로 모여들었다. 그해 추석 명절 매출은 1년 전의 2배가 넘었다. 작은 성공에 고무된 상인들은 이벤트를 점차 늘려 갔다.

추첨을 통해 사은품을 나눠 주는 ‘감사 세일’, 일주일에 3번 한두 개 품목을 불시에 싸게 파는 반짝 세일 등이 이어졌다. 상인들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산지 직거래와 공동 구매로 원가를 낮췄다. 번영회는 날씨별, 시간대별 고객 수를 조사해 이를 바탕으로 세일 품목을 결정하는 등 합리적인 마케팅 기법으로 상인들을 지원했다.

결과는 대성공.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30% 더 올랐다. 다른 재래시장 상인들의 견학이 줄을 이었다.

윤종순(54) 번영회장은 “무엇보다도 상인들의 의식 변화가 성공을 이끌었다”며 “오히려 우리한테 손님을 빼앗긴 할인점에서 가격 조사를 나오고 우리의 전략을 따라할 정도”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무리 많이 팔아도 웬만하면 인상을 찡그리고는 “장사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장사꾼의 속성이라지만 이곳에서 과일가게를 하는 김명호(46) 씨는 연방 ‘싱글벙글’이다.

“정말 요즘은 좀 돼요.”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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