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지방선거 앞두고 ‘대학등록금 절반 인하’ ‘후불제’

  • 입력 2006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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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5·31지방선거를 앞두고 청년층을 겨냥해 대학생 등록금 인하 관련 정책을 쏟아내고 있으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등록금 인하’ 자체는 등록금 마련에 허리가 휘는 학부모와 학생에게 솔깃한 이슈이지만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라는 각론에 들어가면 여러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11일 성균관대 특강에서 “전체 등록금 중 3조 원 정도를 장학금으로 대치하고 나머지 일부를 다른 방안에서 찾으면 등록금을 반액으로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은 14일 ‘대학등록금 부담 반으로 줄이기 정책 토론회’를 열고 세부 계획을 조율할 예정이다.

이에 맞서 열린우리당 국회 교육위원회 간사인 정봉주(鄭鳳株) 의원도 12일 ‘대학 선(先)무상교육제’ 도입을 제안했다.

이는 국가가 국채 발행을 통해 등록금을 우선 납부하면 해당 대학생은 졸업 후 취업을 한 시점부터 소득 수준에 맞게 등록금 원금을 갚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는 “여야의 공약대로 시행된다면 좋겠지만 막대한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가 문제”라며 “재원 조달도 어렵지만 대학을 위해 다른쪽 예산을 줄이면 예산의 균형 집행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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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반값’ 대안=현재 전체 대학의 총등록금 규모는 10조5000억 원. 이 중 장학금 1조5000억 원, 학자금 융자 8300억 원을 제외하면 8조 원을 학부모가 부담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8조 원의 절반인 4조 원을 마련하면 등록금을 반값으로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구체적으로는 △국가 차원의 장학기금 1조 원 △근로장학금을 4800억 원으로 확대 △군 사병 월급 예치 뒤 등록금 활용 8000억 원 △저소득층 대여 학자금의 장학금 전환 3000억 원 △사립대에 10만 원 기부 시 11만 원 세액 공제로 1조 원 확보 등이다.

우선 한나라당은 3조 원의 국가 장학기금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초기 재원은 삼성그룹이 내놓은 8000억 원의 기부금과 지역별 휴면예금(1000억 원) 등으로 1조 원, 두뇌한국(BK)21 등 각종 사업의 방만한 예산정비로 1조 원, 위원회 운영 및 정권홍보비 등을 삭감해 1조 원을 조성한다는 것. 이 중 1조 원은 매년 장학금으로 지출하고, 1조 원은 장학기금으로 적립한다는 내용.

그러나 역점을 둬야 할 대학 연구비나 인적 자원개발 예산을 되레 삭감해야 하고, 예산 마련을 위해 무리하게 사업을 조정할 경우 다른 분야에 주름이 가는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예산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군 사병 월급의 등록금 활용을 보면 2008년까지 월 20만 원으로 인상하려면 8000억 원이 필요하다. 그만큼 세금을 더 걷어야 하고 개인 의사와 상관없이 모든 사병의 월급을 국가가 ‘차압’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다만 정치자금처럼 10만 원 기부 시 11만 원을 세액 공제해 주는 제도는 기부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1조 원을 조성하려면 1000만 명이 10만 원씩 기부해야 하고, 1조1000억 원을 공제해 주는 데 따른 세수 결손을 어떻게 메울지는 또 다른 문제다.

▽열린우리당 등록금 후불제=정 의원이 제안한 ‘대학 선(先)무상교육제’는 엄밀히 말해 후불제 개념이지만 혜택을 강조하기 위해 ‘무상’이란 용어를 쓴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국가가 국채 발행 등을 통해 등록금을 대신 납부하고 해당 대학생이 나중에 취업을 하고 나서 일정한 소득원을 확보하면 그 소득의 정도에 따라 갚도록 한다는 것이다.

현재 10년 거치 10년 상환의 학자금 대출제도를 통해 올 1학기 25만 명에게 8331억 원을 대출했지만 이자가 7%에 이르고 대학 졸업 직후부터 갚아야 하기 때문에 제약이 있다는 게 정 의원의 주장이다.

정 의원은 2007년부터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2012년부터는 전체 계층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2012년부터 이 제도를 시행할 경우 상환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시점인 2016년경까지 4년간은 해마다 원금과 이자를 합쳐 최소한 11조500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이것보다 더욱 큰 문제는 해당 학생이 나중에 취업을 못하거나 수입이 적으면 갚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연간 1조5000억 원의 등록금 국채 발행과 이자 750억 원의 재원 마련도 문제지만 수혜자의 도덕적 해이를 가져올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 의원은 영국이나 호주에서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소개했지만, 이들 국가는 정부가 대학 교육을 책임지다 부담이 커지자 개인에게서 비용을 받아내기 위해 이를 도입한 것이라 취지가 우리와는 다르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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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철 기자 inchul@donga.com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대학가 “말은 고맙지만… 재정확충 방안 비현실적”

한나라당 허태열 사무총장(오른쪽)이 12일 여의도 국회 기자실에서 김덕룡 박성범 의원이 서울 서초구청장과 중구청장 공천과 관련해 금품을 받았다는 제보가 접수돼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정치권의 등록금 반값 정책에 대해 대학 측에서는 “관심에 대해서는 환영하지만 현실성은 의문”이란 반응을 보였다.

연세대의 한 관계자는 “국고보조금이 늘어나면 학생들과 싸워 가면서까지 등록금을 올릴 필요가 없으니 사학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국고나 장학기금 3조 원만으로 1, 2년이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결국 선거공약용이니 실현되기는 어려운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고려대의 한 관계자도 “좋은 취지의 제안이지만 정부가 현재의 교육재정도 제대로 마련하고 있지 못한 상황인 것을 감안하면 비현실적”이라며 “어떤 방식으로 모금을 할 것인지, 어떻게 각 대학에 배분할 것인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안을 제시해야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국채까지 발행한다고 하는데 지금도 빚이 많은데 재원 마련이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또 이러한 제도를 도입하면서 대학 자율에 맡겼던 등록금 정책을 국가가 좌지우지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학생이나 학부모 역시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성균관대 사학과 3학년 신대업(21) 씨는 “등록금이 300만∼400만 원인 상황에서 등록금을 절반으로 낮출 수 있다면 환영”이라면서도 “하지만 장학기금을 통해 등록금을 낮춘다는 방안은 비현실적인 것으로 들린다”고 말했다.

고려대 법학과 4학년 엄성준(28) 씨도 “등록금을 낮출 수만 있다면 괜찮은 방안이지만 군인 월급을 교육 재정으로 관리하는 방안은 비현실적이며 대학생이 아닌 군인도 있다는 점에서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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