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민주노총 ‘세상 바꾸는 파업’이 만들 세상

  • 입력 2006년 1월 17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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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이 지난주 중앙위원회를 열고 올해 활동 방침을 ‘세상을 바꾸는 총파업 투쟁’으로 정했다고 한다.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실현,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 노사관계 민주화 방안 마련을 3대 목표로 내걸고 ‘범(汎)민중 연대투쟁’을 전개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을 관철하기 위해 4월부터 총파업 투쟁에 들어갈 것이라고 민주노총은 밝혔다. 또 이른바 진보 진영의 정치적 영향력과 단결력을 강화하기 위해 상설(常設) 연대투쟁 조직을 갖추고 ‘산별(産別)연맹 내 단위사업장 릴레이 파업’도 벌일 것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민주노총은 세계와 시대의 흐름을 역류(逆流)하고 있다. 얼핏 그럴듯한 목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노골적으로 정치투쟁, 계급투쟁을 하겠다는 것이다.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요구는 급진적이기 짝이 없으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은 채 비정규직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주장은 노사관계의 균형을 아예 깨 버리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다. 입으로는 노사관계 민주화를 되뇌지만 사(使) 측과 정부를 쥐고 흔들려는 행태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더구나 북-미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은 이미 노조단체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노동의 자유가 없는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놓으면서 어떻게 우리 노동자의 권익을 말할 수 있는가. 반(反)세계화 투쟁을 핵심 사업으로 내세우고 4월 스위스에서 열리는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저지 투쟁을 벌이겠다는 것도 국익을 심각하게 해치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우리나라는 WTO 체제 속에서 지난해 수출입 5000억 달러를 돌파한 세계 12위의 무역대국이다. 민주노총 조합원들도 그 수혜자들이다. 우리가 WTO 체제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당장 먹고살 수도 없다.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기도는 노동자 권익과 거리가 먼 일이다. 5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진보정당 대중화를 외치고 나선 것은 무슨 뜻인가. 북-미 평화협정 체결 등의 주장에 비추어 볼 때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동자를 혁명의 도구로 이용하겠다는 게 아닌가.

세계의 노동운동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노조가 강했던 독일 영국 등에서도 이제 핵심 쟁점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일자리 문제다. 운동 방식도 투쟁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바뀌고 있다. 독일의 대표적 기업인 지멘스는 지난해 주당 근무시간을 임금 추가 없이 35시간에서 40시간으로 연장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측이 아닌 노조가 이런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일자리를 늘리기는커녕 기업을 해외로 내쫓는 카드만 내놓고 있다. 지난해 구직활동을 하다가 실패해 아예 취업을 포기하고 ‘그냥 쉬는’ 사람이 123만8000명에 이르렀는데도 민주노총은 이런 일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의 ‘세상을 바꾸는 파업’은 결국 노조가 몰락한 세상을 앞당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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