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DJ정부 국정원, 기자 휴대전화 도청”

  • 입력 2005년 10월 31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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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옛 국가안전기획부)이 연합뉴스 A 기자의 휴대전화를 불법 감청한 단서를 검찰이 확보하면서 국정원의 ‘언론사찰’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국정원의 도청이 정계, 재계, 정권 주변 등에 이어 언론사 일선 기자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전 분야를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이뤄졌음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언론사찰 의혹도 결국 사실로…”=그동안 언론사 기자들에 대한 도청 의혹은 정치권 등을 중심으로 계속 제기돼 왔다. 한나라당은 2002년 대통령선거 전 “국정원이 국회 출입기자들에 대해서도 도청을 했다”며 언론사 사장 및 정치부 기자 등 30여 명에 대한 도청 명세를 공개했다.

문건에 기록된 통화 내용이 구체적이고 당사자들도 통화 내용을 인정하면서 국정원의 언론사찰 의혹이 대선정국의 핵심 이슈로 부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정원이 도청 의혹을 전면 부인한 데다 도청 의혹을 입증할 물증이 없어 의혹으로 남았다.

이런 점에서 검찰이 기자의 전화번호가 기재된 감청장비 사용 신청서를 압수한 것은 국정원의 언론사찰을 입증할 유력한 물증을 확보했다는 얘기가 된다.

특히 이번 단서는 국정원이 기사의 출처와 관련해 취재원을 추적하기 위해 기자를 도청했을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A 기자는 2001년 3월 말 한국의 위성발사계획뿐 아니라 ‘정부청사와 정부출연기관에서 외국인 접촉에 따른 국가 정보 유출이 늘고 있다’는 요지의 기사를 보도했다.

따라서 이러한 보도가 국정원의 도청 유혹을 더욱 부추겼을 개연성이 높고, 다른 기자들도 도청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게 한다.

▽전직 국정원장 사법처리 초읽기=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30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북악산을 함께 오르면서 도청 사건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도 법률공부를 했지만 시효제도가 이렇게 부당한 줄 몰랐다. 딱 하루, 한 시점 차이로 시효를 넘기면 죽을죄를 지어도 탈이 없고, 시효가 남아 있으면 끌려가서 온갖 수모를 겪는다. 도청 얘기를 보면서 시효 지나간 사람들은 참 좋겠다 싶었다. 난 시효 안에 있으니까. 내가 읽은 시효제의 취지는 역사적 흐름이 정상적으로 흘러오는 과정에서 적용되는 것 같은데, 요즘 시효제는 옛날에 죄 많이 지은 사람이 만든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도청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가 임박했음을 느끼게 하는 말이다.

실제로 임동원(林東源), 신건(辛建) 씨 등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국정원장을 지낸 두 사람에 대한 사법처리가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주 중 신 전 원장에 대한 소환 조사와 함께 두 전직 국정원장에 대한 사법처리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사법처리 수위. 검찰은 두 전직 국정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정보기관의 수장을 구속한 전례가 없는 데다 도청을 적극적으로 지시하지는 않은 점 등을 들어 불구속 기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반면 김은성(金銀星·구속기소) 전 국정원 2차장에 대한 사법처리만으로는 도청파문을 잠재울 수 없기 때문에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강경한 견해도 나오고 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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