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전쟁]“부담없는 과목이 없다”

  • 입력 2005년 3월 23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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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들은 집토끼, 산토끼, 학원 토끼까지 세 마리를 다잡는 ‘포수’가 돼야 할 것이다.’

지난해 10월 교육인적자원부가 발표한 ‘2008학년도 이후 대입제도’를 발표했을 때 한 입시 전문가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전망하며 비유한 말이다.

교육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비중을 낮추는 대신 학교생활기록부 비중을 강화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만 수험생들은 수능-내신-심층논술(논술)을 모두 잘해야 하기 때문에 사교육에 더 의존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었다.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이런 현상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

▽학교 간 실력차 불인정 문제=교육부는 지금까지 평어(수우미양가)와 과목별 석차를 제시하던 학생부 교과성적 표기에서 평어를 없애고 상대평가로 바꾸면서 원점수, 과목평균, 표준편차도 같이 적도록 했다.

고교들이 학생의 성적을 높이기 위해 시험을 쉽게 출제해 대부분의 학생이 ‘수’를 받는 내신 부풀리기가 성행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학에서는 고교 내신을 믿지 못해 학생부 실질반영률을 점점 낮추는 악순환이 계속돼 왔다.

그러나 앞으로 과목평균과 표준편차를 적게 되면 내신 부풀리기를 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학생부에서 과목별 9등급을 적용한 것은 위력적이다. 1등급 4%, 2등급 7%다. 100명이 수강한 과목의 경우 4명만 1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1등급을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학생부 반영 오리무중”=입시 전문가들은 새 제도의 방향은 잘 잡았지만 수능과 학생부의 획일적인 등급제 시행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수능 점수 따기 경쟁을 막기 위해 원점수를 주지 않고 등급만 제공하는 데 대해 대학들은 변별력이 없다고 지적한다. 수험생이 60만 명이면 1등급(4%) 2만4000명의 실력을 동일하게 취급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교육당국은 학생부의 반영 비중을 높이겠다고 하지만 실제로 고교들의 성적 관리를 신뢰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2008학년도 대입 때 대학들이 전 과목을 반영할지 또는 일부 과목만 반영할 것인지 발표하지 않아 현재 고교 1학년생들은 안개 속에서 내신을 관리해야 하는 실정이다. 현 규정에는 대입 전형 1년 전까지 발표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새 제도의 첫 적용을 받는 고교 1학년생들은 불안한 마음에 내신 전 과목을 잘 받기 위해 내신 과외를 하는 현상이 빚어지는 것이다.

김영일교육컨설팅 김영일 소장은 “대학들은 국어 영어 수학 등 어떤 과목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를 빨리 내놔야 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교육당국이 학생부 반영률을 높인다고 강조해 학부모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 선발권 보장해야=내신은 고교별 실력 격차를 반영하지 못하고, 수능은 변별력이 없는 상황에서 대학들은 논술이나 심층면접에서 검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논술은 시험방식이나 범위가 다양해 학생들은 더욱 학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학원가에서 논술이나 국어가 가장 잘나가는 과목으로 뜨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대학 관계자들은 “교육부가 자꾸 입시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선 어떤 정책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대학이 알아서 학생들을 뽑도록 자율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인철 기자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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