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전쟁]“학교서 내주는 숙제까지 과외할 판”

  • 입력 2005년 3월 23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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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저녁 아들과 딸을 학원까지 태워다 주고 데려오느라 입술이 다 부르텄어요.”

고교 2년생 딸과 고교 1년생 아들을 둔 A(46·여·서울 강남구 대치동) 씨는 “올해부터 고교 내신 비중이 커진다고 해 아들을 지난 겨울방학부터 전 과목 내신 학원에 보낸다”고 말했다.

아들 B 군은 중학교 때까지는 영어 수학 학원만 다녔지만 지금은 국어 영어 수학 논술 사회 및 과학 탐구학원을 다닌다. ‘자습일’로 정한 금요일 하루만 빼고는 일주일 내내 학원을 다닌다.

국어 영어 수학은 일반 보습학원, 논술은 6명이 함께 배우는 그룹과외, 사탐 과탐도 각각 다른 학원을 다니기 때문에 ‘학원 스케줄’을 짜서 관리하지 않으면 헷갈릴 정도다. 두 아이의 학원비만 월 240만 원이 들지만 대치동에서 이는 저렴한 수준이란다.

학원 공부는 방과 후 오후 6∼9시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저녁을 먹을 시간이 없어 모자가 차 안에서 김밥 등으로 대충 때우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악기 연주를 하나씩 준비하라는 음악 교사의 숙제 때문에 음악 과외를 해야 할지 고심 중이다.

A 씨는 “학교에선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고 악기 연주 준비를 하라고 하면 결국 학원에서 배우라는 말이냐”며 “예체능 과목도 1등급을 받아야 하니 정말 괴롭다”고 말했다.

현 고1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과 학교생활기록부를 모두 9등급제로 전환하면서 수능, 내신, 심층 논술에 모두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고2인 딸보다 아들 뒷바라지가 훨씬 힘들다는 것.

1등급과 2등급의 차이는 입시에서 천양지차. 1등급을 받지 못하면 명문 대학 진학이 어렵기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현행 입시제도가 학생 스스로 알아서 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변수가 많은데다 출제방향 이 명확하지 않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A 씨는 “중간고사는 다가오는데 아직도 서술형 평가의 구체적 방법 등은 전혀 정해진 게 없다”며 “학생과 학부모들이 불안한 마음에 학원에 매달리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A 씨는 “아이들 뒷바라지에 남편과 나는 ‘영세민’ 수준으로 살고 있지만 아들이 원하는 대학에 간다면 후회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A 씨는 남편이 무얼 하느냐는 질문에 ‘현직 교사’라고 조그맣게 말했다.

노시용 기자 syr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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