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매매특별법 시행 6개월]紅燈 꺼졌지만…‘변태영업’ 불야성

  • 입력 2005년 3월 21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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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집창촌 업소 상당수가 문을 닫거나 업종을 전환했다. 21일 서울 용산역 앞 집창촌에서 많은 업소의 불이 꺼진 가운데 한 윤락여성이 지나가던 차량을 향해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지난해 9월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집창촌 업소 상당수가 문을 닫거나 업종을 전환했다. 21일 서울 용산역 앞 집창촌에서 많은 업소의 불이 꺼진 가운데 한 윤락여성이 지나가던 차량을 향해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19일 오전 1시경, 성매매 실태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취재팀이 서울 종로구 지하철1호선 종각역 일대를 지날 때였다. 성매매 호객꾼 10여 명이 ‘2차가 보장된 노래방이 있다’며 접근했다.

한 호객꾼을 따라 그가 대기시켜 놓은 승용차를 타자 속칭 ‘강남2호점’이라고 부르는 서초구의 한 노래방으로 안내했다. 이 노래방은 남성 고객이 대기 중인 10여 명의 여성 중 맘에 드는 사람을 파트너로 고른 뒤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다 뜻이 맞으면 인근 숙박업소 등으로 자리를 옮겨 성매매를 하는 곳. 성매매를 전제하고 만나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섹스방’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여성 A 씨는 “동료 20여 명 중 7, 8명이 집창촌 출신”이라며 “주말에는 방 20개가 가득 찬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간, 다른 취재팀은 종로구의 한 PC방을 찾았다. 취기가 오른 남성들이 얼굴과 신체조건 등을 보고 성매매 여성을 선택하는 이른바 ‘인터넷 집창촌’을 뒤적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3만 원 안팎의 가입비를 내고 이들 사이트에 가입하면 남성들은 최대 100여 회의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메시지를 보낸 뒤 답변을 하는 여성과 만나 성관계를 맺으며, 화대는 통상 10만∼20만 원 선에서 흥정된다.


▽형태를 바꾼 성매매=23일로 시행 6개월이 되는 성매매특별법은 한국의 밤 문화를 크게 바꿔놓았다.

가장 큰 변화는 ‘성매매는 범죄’라는 인식을 확산시킨 것. 한 기업체 부장은 “기업 등에서 접대수단으로 공공연하게 성매매를 권하던 관행이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경찰의 단속이 성매매 여성이 많이 모여 있는 데다 집중관리가 가능한 집창촌을 주로 타깃으로 함에 따라 이곳도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성매매 여성과의 접촉을 알선해주는 인터넷 사이트. 3만원 안팎의 가입비를 내면 사이트에 올라있는 여성들에게 100여건의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런 사이트 10여개가 현재 성업중이다. 인터넷화면 캡쳐

서울 동대문구의 대표적인 집창촌인 속칭 ‘588’의 한 업주는 “지난해 12월부터 우여곡절 끝에 영업을 재개했지만 월 150만 원인 건물 임대료도 내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부산의 집창촌인 속칭 ‘완월동’에서는 윤락업소 업주 이모(51) 씨가 적자에 시달리다 19일 자살하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법 시행 이전인 지난해 9월 5567명이던 집창촌 종사자가 2736명으로 절반 이상 급감했고, 집창촌 업소도 절반 이하로 줄었다.

그렇다고 성매매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남성휴게실, 피부숍 등의 간판을 내걸고 유사 성행위를 하는 업소나 룸살롱의 변형인 ‘섹스방’ 등이 지난 6개월 사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대구 중구 도원동의 속칭 ‘자갈마당’에서 15년간 영업해 온 업주는 “여기서 일하던 여성들이 손님을 1 대 1로 만나는 ‘주택가 업체’로 옮겨갔다”고 말했다.

한 성매매 여성은 “손님들이 집창촌과는 달리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단속될까 불안해 할 필요가 없어 변형 성매매 업소를 더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평가와 대안=이런 변칙적인 성매매 행태에 대해 전문가들은 경찰이 근본적인 대책 없이 단속에만 힘을 쏟는 바람에 한 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는 이른바 ‘풍선효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지적한다.

즉 성매매 여성의 재활대책이나 성 구매 남성들에 대한 교육대책 없이 성급히 법을 시행하다 보니 생겨난 현상이라는 것.

집창촌 업주 및 여성들의 모임인 ‘한터’ 관계자는 “법 시행 이후 성매매 여성들이 외국으로 많이 가기도 했으며 그중 일부는 여권을 빼앗기고 감금까지 당해 국내에서보다 더 열악한 여건에 놓인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국여성단체연합 조영숙(曺永淑) 사무총장은 “성매매 여성을 학대 폭력 착취 등의 범죄로부터 보호한다는 법 취지는 상당 정도 이뤄졌다”며 “아직 성과가 뚜렷하지 않지만 과도하게 팽창된 성 산업 규모도 축소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대구=정용균 기자 cavatina@donga.com

부산=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열악한 시설… 말뿐인 지원… 겉도는 재활

“옛 동료들이 ‘지원시설에 가봐야 도움이 안 된다’며 오려고 하지 않아요.”

5년째 해오던 성매매를 중단하고 지난해 서울시내의 한 ‘성매매 피해여성 지원시설’에 입소한 A 씨는 이렇게 말했다.

지원시설이 미용, 애견관리, 요리 등 교육프로그램을 갖고 있지만 따로 수입이 없어 매달 200만 원 이상 소비하던 성매매 여성들이 쉽게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

이 때문에 부산 ‘완월동’과 인천 ‘옐로하우스’ 등의 현장상담소에서는 탈(脫)성매매 의지가 있고 한달에 세 차례 이상 상담받는 것을 조건으로 6개월간 월 40만 원씩 긴급생계비를 지원하기도 한다.

다른 성매매 여성 B 씨는 “포주들이 성매매 여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원시설에 입소하면 하루 12시간 동안 공장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가 성매매 피해 여성의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해 세운 지원시설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여성부는 지난해 9월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전국 36개의 지원시설에서 교육받은 탈성매매 여성 중 4명이 창업에 성공했으며 28명은 대학에 진학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지원시설에 입소한 성매매 여성(507명)은 경찰이 특별법 시행으로 감소했다고 밝힌 성매매 여성(2831명)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경찰 단속이 느슨해진 올해부터는 지원시설로 입소하는 성매매 여성의 수가 특별법 시행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지방의 지원시설은 더 심각하다. 충북은 성매매 피해여성 보호를 위한 예산을 전혀 배정하지 않아 지난해 10월 여성부 및 산하기관 국정감사에서 지적을 받았고 올 1월에야 성매매피해상담소가 문을 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5, 6명이 상담한 것이 전부.

지원시설은 전국에 36개가 있지만 시설이 열악한 데다 여성부가 제대로 심사를 하지 않고 허가를 내줘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지방의 한 쉼터는 산골짜기에 지어져 찾는 이가 거의 없다.

성매매여성 지원시설인 은성원의 최정은(崔廷銀) 사무국장은 “성매매 여성이 재활의 효과를 신뢰할 수 있도록 지원시설은 그들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여성부는 성의를 가지고 지원시설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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