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원효와 결혼한 불교학자 은정희 前교수

  • 입력 2005년 2월 22일 1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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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의 주요 저작을 모두 역주해 낸 은정희 서울교대 전 교수. 그는 "극단의 쟁론들을 화해시키려 한 원효의 사상은 학문하는 사람이 가져야할 태도"라고 말했다. 전영한기자
원효의 주요 저작을 모두 역주해 낸 은정희 서울교대 전 교수. 그는 "극단의 쟁론들을 화해시키려 한 원효의 사상은 학문하는 사람이 가져야할 태도"라고 말했다. 전영한기자
지난해 서울교대에서 정년퇴임한 은정희 교수(66·한국철학)가 한국 불교의 거목인 원효(元曉·617∼686)의 저작 ‘이장의(二障義·두 가지 번뇌에 관한 글)’를 최근 역주해 펴냈다.

이로써 평생 원효 사상 연구에 몰두해온 은 교수는 1991년 고전국역사상 기념비적 작품으로 꼽히는 ‘대승기신론소·별기(大乘起信論疏·別記)’ 역주와 2000년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 역주에 이어 원효의 주요 저작들을 모두 역주해 주목받고 있다. 1983년 대승기신론 연구로 고려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여 년이 걸린 셈이다. 특히 번역이 대접받지 못하는 학계 풍토에도 불구하고 그의 번역은 ‘100년 안에 다시 나오기 힘든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은 교수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댔던 초등학교 5학년 때 ‘괴도 뤼팽’을 읽다가 처음으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고민한 뒤 이를 평생의 화두로 삼아 연구해 왔다.

“고성(古城)의 방들을 수색하던 탐정 조수가 거미줄이 잔뜩 낀 옥좌를 보곤 ‘아, 저기에는 아리따운 왕비와 근엄한 왕이 앉아 있었겠지’라고 말하는 대목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책을 떨어뜨렸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두어 달 동안 거의 먹지도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했어요. 그러다 ‘왜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 앞에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산다면 나는 훌륭한 사람이다’는 결론을 내렸지요. 속이 다 시원합디다.”

은 교수는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뒤 불교 강의를 들으면서 다시 한번 이런 체험을 했다.

“수석 졸업했지만 취직이 안 돼서 아버지와 오빠, 세 남동생의 ‘식모살이’를 2년 반 정도 했어요. 그때 서울 조계사에서 고은(당시 승려), 광덕 스님의 불교 강의와, 서울대 문리대에서 이기형 교수의 ‘금강삼매경론’ 강의를 듣는데 내용이 너무 좋았어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느꼈던 문제를 원효도 고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요.”

출가(出家)의 기회도 있었다. 인홍 스님과 성철 스님이 20대의 은 교수를 보자마자 “너 나랑 같이 절에 가자”고 했지만 따라가지 않았다.

“중 되는 것보다 공부를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은 교수는 태동고전연구원과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조규철 선생 등에게 한문을 배워 김동화 이익진 씨 등 걸출한 불교철학자들과 원효 저술을 강독했다.

은 교수는 원효가 이장의에서 ‘우리가 무명(無明)에 허덕이는 번뇌와 탐욕, 탐심의 번뇌를 어떻게 벗어나서, 진정한 나를 깨달을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고 말한다. 인류의 윤리적 구제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원효는 나만 옳고 너는 틀렸다는 이분법에서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했어요. 각자의 입장을 인정하면서 근본적 가치, 즉 석가의 근본정신에서 보면 이런 쟁론들을 화해시킬 수 있다는 ‘화쟁(和爭)’ 사상을 말했지요.”

지금도 거의 매일 다른 학자나 제자들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자택에서 ‘구사론(俱舍論)’, ‘조론(肇論)’ 등 경전을 강독하는 은 교수는 아직 미혼이다.

“가장 가치 있는 일은 공부와 깨닫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결혼은 내 능력이 다했을 때 마지막에 하겠다고 결정했지요.”

원효 같은 남자가 나타나면 결혼을 할까. 은 교수는 그저 빙긋이 웃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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