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재단 이사회 “우리가 들러리냐” 반란표

  • 입력 2004년 12월 26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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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재단의 새 이사장 선출 직전, 이 재단의 노조가 청와대 내정설이 나돈 서동구(徐東九) 전 KBS 사장에게 재단 운영과 관련한 공개질의를 보내고 서 씨의 답을 ‘내정자 답변’이라는 제목으로 노조원들에게 공지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고 있다. 이 같은 일을 알게 된 언론재단 일부 이사들은 “이사회 이전에 내정자 운운한 것은 적절치 못한 처사”라고 반발했으며, 이것이 23일 이사회 표결에서 서 씨의 패배로 연결됐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언론재단 노조(위원장 정민)가 서 씨에게서 받은 ‘내정자 답변’을 노조 홈페이지에 게시한 것은 이사회 개최 전날인 22일 오후. 서 씨는 “적법한 선임절차를 앞둔 민감한 시점에 제가 내정자인 양 여러분의 물음에 반응한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날 뿐 아니라 경박한 처신”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재단의 법적 지위와 항구적인 재원이 확립되고… 언론 전문화 지원사업의 본령을 회복하지 않고는 재단의 존립가치가 위협받을 것… 여러분이 걱정하듯 새 경영진이 어떻게 구성되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다.

언론재단 노조는 23일 박기정(朴紀正) 현 이사장이 선출되자 즉각 ‘박기정 이사장 연임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다. 노조의 한 조합원은 “여당이 발의한 신문법안이 통과되면 현재의 언론재단이 해산되고 언론진흥원으로 바뀌기 때문에 조직원들 사이에 생존권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해 있다”며 “서 씨에게 서둘러 질의한 것은 이런 불안감의 반영”이라고 말했다.

한편 23일 이사회 표결에서 재선된 박기정 이사장은 26일 “정부가 이사회 결정을 뒤집으려면 정관부터 바꿔야 할 것”이라며 “27일 노조와 만난 뒤 원칙에 따라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말해 사퇴 거부를 시사했다.

정은령 기자 ryung@donga.com

▼시스템 무시… 코드-人治 난무… 언론재단 파행으로 본 실태▼

공기업 인사의 고질적 병폐인 ‘낙하산 인사’를 막고 투명한 인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공기업 인사시스템이 청와대와 정부의 ‘자의적인 기준’ 때문에 파행 양상을 보이고 있다.

통합증권거래소 이사장과 한국언론재단 이사장 인선에서 불거진 인사 파행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청와대와 정부는 입맛에 맞지 않는 인사가 인사추천위원회에서 합법 절차를 거쳐 올라올 경우 사퇴 압력은 물론 ‘흠집 내기’에 열을 올려 결국 공기업 인사도 ‘코드인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시스템 무시, 청와대 정부 노골적 개입=박기정(朴紀正) 한국언론재단 이사장은 언론재단 최고의결기구인 재단이사회의 표결을 통해 단일후보로 선정됐다. 절차상 소관부처인 문화관광부 장관의 임명 절차만 남아 있는 셈이다.

앞서 통합증권거래소 이사장 인선 때는 정건용(鄭健溶) 전 산업은행 총재 등 재정경제부 관료 출신 3명이 인사추천위원회 후보로 선정됐으나 청와대에서 “모피아(재경부 관료) 출신은 안 된다”며 거부했고 이들 모두 자진 사퇴했다.

두 기관 모두 법적인 인사추천기구인 이사회와 인사추천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최종 후보로 선정됐는데도 청와대와 소관 부처의 입맛과 이해관계에 따라 거부당한 것.

특히 청와대와 여권이 언론정책고문 이사장으로 미는 서동구(徐東九) 씨는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후보 언론정책고문, 당초 통합거래소 이사장으로 밀었던 한이헌(韓利憲) 씨는 대선 직전 치러진 6·13지방선거에서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했던 인물. 또 곡절 끝에 통합거래소 이사장에 최종 낙점된 이영탁(李永鐸) 전 국무조정실장은 17대 총선 열린우리당 출마자(경북 영주)여서 ‘보은인사’라는 지적을 사고 있다.

정부 부처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런 식이면 인사추천위원회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비판했다.

▽추천 후보에 대한 ‘감정적 대응’=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박 이사장에 대해 “감사 때 지적된 사항도 있었지만 임기를 보장하고 명예롭게 물러나는 것으로 했다”면서 마치 박 이사장이 큰 비리에 연루된 듯한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감사원 고위 관계자는 “언론재단 이사장 인사에 영향을 끼칠 만한 감사 지적사항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며 “중대 사안이라면 해당 부처에서 감사한 것이라고 해도 감사원에서 ‘모니터링’을 하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다”고 밝혔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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