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상훈]상식 밖의 ‘신체 실험’

  • 입력 2004년 11월 12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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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푸드의 해악을 입증하려고 미국 영화 ‘슈퍼사이즈 미’를 흉내 내 햄버거와 콜라 등으로 하루 세끼 식사를 해온 시민단체 ‘환경정의’ 간사 윤광용씨의 실험이 24일 만에 중단됐다.

11일 기자회견장에 나온 윤씨는 지쳐보였다. 체중은 3.4kg이 늘었다. 근육은 줄고 체지방이 크게 높아졌다. 간 질환의 지표인 GPT 수치는 3.4배나 늘었다. 계속 실험을 강행할 경우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환경정의는 윤씨의 건강악화를 근거로 “패스트푸드가 미치는 악영향이 입증됐다”며 향후 ‘안티 패스트푸드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시민이나 누리꾼(네티즌)의 반응은 냉담하다.

“하루 세끼를 햄버거만 먹는 한국인이 어디 있나?” “편식에다 운동부족이니 당연한 결과 아닌가?” “융통성이 없는 억지실험이다.”

시민의 건강을 걱정하는 환경정의의 의도를 폄훼하거나 패스트푸드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미 패스트푸드는 열량만 높고 영양은 좋지 않은 ‘정크푸드’라고 불리지 않는가.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그러나 이번 실험이 패스트푸드의 해악을 입증했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삼계탕 같은 보양식을 매 끼니 먹는다 해도 영양불균형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하물며 햄버거야 말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 ‘신체 실험’이라는 발상부터가 위험하다. ‘봐라. 이렇게 나빠졌다’ 하는 식의 ‘충격요법’은 효과도 약하고 반감만 부른다. 윤씨는 지난달 26일 건강에 이상신호가 나타났을 때 의사의 권유대로 실험을 중단해야 했다.

이런 식이라면 담배의 해악을 입증하기 위해 하루 세 갑씩 담배를 피우는 실험이 등장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목적이 좋다고 수단이 모두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약을 개발할 때에도 여러 차례 동물실험을 거친다. 독성이 없다는 게 확인돼야 비로소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한다. 인간은 실험실의 쥐가 아니다. 환경정의도 이 점을 새겼으면 한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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