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의 서울]영화 ‘접속’과 피카디리 극장 앞 광장

  • 입력 2004년 10월 7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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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그랬죠. 다시 만날 사람은 꼭 만난다는 걸 믿는다고요.” 영화 ‘접속’에서 수현(전도연)과 동현(한석규)이 마침내 만나는 장소인 서울 종로3가 피카디리극장 앞. 1997년 영화 촬영 당시 아담한 극장이던 피카디리는 이제 지하 5층 지상 9층의 복합상영관이 돼 재개관을 눈앞에 두고 있다.
“언젠가 그랬죠. 다시 만날 사람은 꼭 만난다는 걸 믿는다고요.” 영화 ‘접속’에서 수현(전도연)과 동현(한석규)이 마침내 만나는 장소인 서울 종로3가 피카디리극장 앞. 1997년 영화 촬영 당시 아담한 극장이던 피카디리는 이제 지하 5층 지상 9층의 복합상영관이 돼 재개관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수현이에요. 한번 만나 보고 싶어요. 극장 앞에서 기다릴게요.”

“여러 번 전화했었어요. 극장 앞에서 기다릴게요.”

“내일이 마지막이군요. 극장 앞에서 기다릴게요.”

홈쇼핑 가이드 수현(전도연)이 말하는 ‘극장’은 서울 종로3가의 피카디리극장이다. PC 통신을 통해 알게 된 라디오 PD 동현(한석규)이 갑자기 호주로 떠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수현은 동현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어 자동응답기에 메시지를 남긴다.

출국 전날 밤 동현은 피카디리와 단성사 사이 광장으로 나간다. 그러나 그는 수현을 보고 다가가려다, 갑자기 마음을 바꿔 피카디리극장 옆 카페로 올라간다. 동현은 창문을 통해 자신을 기다리는 수현을 내려다본다.

피카디리극장 앞 보도블록에는 큰 오성(五星)이 그려져 있고 그 사이사이에 유명 배우들의 손도장이 찍혀 있다. 1990년대 후반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노천카페가 있던 장소이기도 하다. 밤이 깊어 가면서 노천카페의 파라솔들이 접히고, 수현은 계속 동현을 기다린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딱 그 광장 넓이만큼의 고독과 쓸쓸함.

‘접속’ 세대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피카디리극장과 단성사 사이의 광장은 영화 ‘접속’(1997년 개봉)의 마지막 장면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이곳은 원로 영화인과 원조 ‘할리우드 키드’에게는 더욱 각별한 곳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영화의 중심지는 피카디리극장-단성사-서울극장으로 이어지는 삼각형이었다.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 사수 집회를 갖기 위해 모이는 곳이 여기였고, 멀게는 ‘야인시대’의 명월관이 있던 자리가 바로 이곳이다. 단성사에서는 최초의 국산 영화인 ‘의리적 구투’, 최초의 발성영화인 ‘춘향전’, 나운규의 ‘아리랑’이 개봉됐다.

그러나 지금의 단성사 앞은 김두한의 자취는커녕 ‘접속’의 마지막 장면조차 떠올리기 힘들다. 단성사와 피카디리 극장의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기 때문.

지상 9층, 지하 5층 규모로 지어지는 ‘피카디리 플러스’는 유리와 스테인리스강 재질의 유선형 건물로 이미 마감공사가 거의 끝나 일부 층을 분양하고 있다. 신축 단성사 역시 골조가 일부 보이긴 하지만 마감공사가 거의 끝났다. 전도연이 한석규를 기다리던 광장은 피카디리 플러스와 지하철 종로3가역 지하 연결공사 때문에 철판으로 덮여 있다.

두 극장의 리모델링 공사가 끝나면 이곳은 다시 만남의 장소로 사용될 테지만, 영화 ‘접속’에서처럼 누군가를 오롯한 마음으로 오래 기다릴 수 있는 곳이 될지는 의문이다. 금속 재질의 9층짜리 극장 겸 복합 상가가 고객이 아닌 사람은 저리 가라고 할 것만 같다.

단성사 부근에서 시작해 피카디리 플러스 옆을 지나 탑골공원으로 통하는 폭 1m의 작은 골목이 피맛골이다. 고관들의 말(馬)이 다니는 종로를 피해 서민들이 다니는 길이라고 ‘피마(避馬)’란 이름이 붙었다. 조선시대부터 서민을 위한 값싼 음식점과 선술집들이 있던 이 길이 멀티플렉스의 공격을 어떻게 받아낼지 궁금하다. 피카디리 플러스와 단성사 공사현장은 지하철 1, 3, 5호선 종로3가역 옆에 있다.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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