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김미진/대학교육의 문제점? 글쎄요

  • 입력 2004년 8월 19일 19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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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모 대학 총장이 학교 홈페이지에 대학교육에 대해 자성의 글을 올렸다는 기사를 읽고 여러모로 생각이 많았다. 나는 올해로 대학교 강사생활 10년째다. 그러니 나름대로 경험도 있고 느낀 점도 많다.

첫해는 천안 단국대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했다. 첫날 강의실에 들어가니 300명쯤 새까맣게 앉아 있었다. 강단은 왜 그렇게 높던지,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불러도 불러도 끝이 없는 출석부를 부여잡고 졸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수강 인원에 대해 누가 귀띔이라도 해줬다면 그렇게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백명 수강생… 쥐꼬리 강의료▼

서울에서 천안까지 차라도 밀리면 왕복 3시간 거리였다. 일주일에 2시간 강의하고 받은 강의료가 거마비를 포함해서 한달에 채 20만원이 안 되었다. 그런 대우가 황당했지만 당시 백수나 다름없던 나로서는 던져주는 대로 덥석 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학교를 오가는 데 투자한 시간이 결코 억울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때 생애 첫 장편소설을 쓰고 있었는데, 고속도로를 오가는 동안 수많은 영감에 사로잡혀 지루한 줄도 몰랐다. 두 번째 학기가 시작할 때쯤 그 작품으로 등단했으니, 그것이 내 인생에서는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드라이브 코스였다.

그 후 10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소설을 쓰고 있고, 4년 전부터는 연세대에 출강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강사인 내 처지는 변한 게 없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여기서도 역시 대형 강의다. 수강인원이 200명이 넘으면 그건 이미 학생이 아니라 군중이다.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비해 강의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코 성립될 수 없는 액수다. 원고료 없이 강사료만 가지고 생활했다면 예전에 목을 매거나 사생결단을 냈을 것이다.

강단에 서는 게 전혀 보람 없다는 것은 아니다. 미술사에 관련된 과목들을 다루다보니 쌓이는 것도 있고 싱싱한 에너지를 계속 충전 받는 느낌이다. 그러나 산더미처럼 쌓인 시험지와 리포트를 채점할 때면 ‘이건 좀 심각하게 많군’ 하며 한숨을 푹푹 내쉴 수밖에 없다.

요즘에는 학기말 우울증을 앓고 있다. 학생들이 작성한 강의평가서 때문이다. 새겨들을 건 새겨듣고 흘려들을 건 흘려들을 수밖에 없지만, ‘강사가 화를 낸다’고 비아냥거린 문장은 정말이지 내 속을 긁어놓았다. 강의를 못한다는 불만이 없어 다행이긴 한데 아니, 강사는 화도 못 낸다는 말인가. ‘교양과목 치고 너무 빡세다’고 적어낸 학생들에게도 할 말이 있다. 한 학기에 시험 두 번, 리포트 한 개. 이게 정말로 ‘빡센’ 것인가. 다른 선생들은 어떤 식으로 강의를 하기에 그런 얘기가 나오는지 정말 궁금하다.

나는 미국에서 10년 동안 유학을 했다. 대학교 때 한 교수가 “이 강의는 한 학기 등록금을 수업시간 수로 나눌 때 대략 얼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어렵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에 다니던 내게는 정말 실감나는 말이었다. 간혹 휴강이라도 하면 본전 생각이 날 수밖에 없었다. 연세대만 해도 ‘등록금 인상 결사반대’ 같은 현수막이 곧잘 내걸린다. 그렇게 등록금은 아까워하면서 왜 휴강하자는 말이 나오는지, 어떻게 공부 좀 살살 가르치라는 말이 나오는지 황당할 뿐이다.

▼한학기 리포트1개가 “빡세다”▼

미국과 한국 교육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할지 모른다. 한국에서는 대학생이 되려면 지옥 같은 경쟁을 거쳐야 한다. 그러니 대학에 와서는 설렁설렁 놀아도 된다고? 입시 때문에 고등학교 시절을 망친 죄를 왜 대학이 뒤집어써야 한단 말인가. 여기가 하버드나 예일이었다면 ‘빡세다’는 말이 그렇게 쉽게 나왔겠는가.

요즘 대학생들이 완전히 절망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80년대 대학생들은 성적을 잘 받는 게 창피한 일이었다는데, 그에 비하면 열심히 공부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한 경쟁시대에 실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한국에서 못하던 공부는 외국 나가서도 못 쫓아간다. 괜히 한국대학 수준 운운하지 말고 자기 공부부터 철저히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물론 공부하지 않고도 잘살 수 있는 사람은 예외지만 말이다.

김미진 객원논설위원·소설가 usedream@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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