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10명중 1명 “맞으며 배운다”

  • 입력 2004년 4월 28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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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지방의 한 대학병원 성형외과 3년차 전공의(레지던트) A씨는 환자 처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오전에 후배인 1년차 전공의 B씨를 병동 처치실로 불러냈다.

A씨는 후배를 야단치는 과정에서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흥분한 나머지 둔기로 머리를 내리쳤다. B씨는 머리뼈 골절과 뇌출혈로 응급 뇌수술을 받아야 했다.

또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아침 회의시간마다 제자들의 차트 정리나 발표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먹으로 머리를 쥐어박고 차트로 머리를 내리치거나 정강이를 걷어찬다.

이 같은 병원 내부의 폭력은 그동안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의 직업 특성상 불가피한 관행으로 치부돼 왔다. 그러나 최근 이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함께 의료계의 폭력을 추방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의료계의 진로를 생각하는 의료인 모임인 월요의료포럼과 대한의사협회는 28일 서울 용산구 의협 3층 동아홀에서 ‘범사회적 폭력 추방을 위한 워크숍’을 열고 그 첫 단계로 의료현장에서 폭력을 추방하는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의협에 따르면 2월 한 달 동안 전국의 개원의와 전공의 1000명을 대상으로 폭력 및 폭언 경험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10명 중 4명이 폭언을 경험했고 10명 중 1명은 직접 폭행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의의 경우 폭행을 가한 사람으로 4명 중 3명이 선배나 교수라고 응답했다. 폭행당한 횟수를 보면 2∼5회가 44.3%로 가장 많았고 10회 이상인 경우도 있었다.

전공별로 보면 외과계열의 폭행 경험 비율이 15.2%로 내과계열(7.6%)보다 2배나 높았다. 외과 계열에서 폭행이 잦은 것은 촌각을 다투는 수술이 많아 의사들 사이의 상하관계가 엄격하고 경직돼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날 워크숍에서는 수술실에서 보좌를 잘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수술 중에 수술장갑을 낀 손으로 수차례 뺨을 얻어맞거나 수술 도구로 머리를 내리치는 사례도 보고됐다.

의료현장폭력추방추진위원장인 아주대 의대 이성낙(李成洛) 석좌교수는 “사회에 만연해 아예 무감각해진 폭력을 추방하기 위한 첫 단추로 생명을 다루는 의료계가 솔선수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때릴 만해서 때렸겠지, 맞을 만한 일을 했겠지 등 폭력을 묵인하는 공감대가 폭력 추방을 어렵게 하고 있다”며 “폭력 행사는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대한병원협회 의협 한국의과대학장협의회 한국의학교육학회 대한전공의협의회 등 각 의료단체들은 앞으로 의료현장에서의 폭력 추방운동에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

이들 단체는 각 병원에 구성된 윤리위원회를 활용해 폭력을 행사한 의료인에 대한 징계를 강화하고 폭력 폭언에 연루된 의사들은 채용에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진한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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