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비정규직' 올 노사관계 뇌관으로

  • 입력 2004년 4월 28일 15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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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근로자도 아니고 실업자도 아닌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가 올 노사 관계를 가늠할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2월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퇴직근로자가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분신자살한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사안의 심각성 때문인지 그간 정규직 위주의 노동운동을 해온 노동계도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올 임단협의 핵심 요구사항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노동시장의 유연성확보를 중시하는 재계와 노사 가운데 서 있는 정부도 고민이 크다.

▽비정규직의 현주소=외환위기로 대규모 기업도산과 대량해고가 이어진 후 양산되기 시작한 비정규직은 1주일~2년 단위로 재계약하거나 하청업체 신분으로 원청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를 뜻한다. 정부에 의하면 비정규직은 전체근로자(1430만명)의 32.6%인 460만명. 노동계는 784만명(55.4%)이라고 주장한다.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50~60% 수준이고 학자금 수당 휴가 같은 복지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현장에선 식당 샤워장 버스 이용까지 차별을 받고 있다.

공공부문도 전체근로자 124만9200명 중 23만4300명(18.8%)이 비정규직이다. 집배원 환경미화원 등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역시 정규직과의 차별이 적잖다.

▽뜨거운 쟁점들=올 임단협에서 10.5~10.7%의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는 양대노총은 비정규직의 임금도 정규직의 85%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

그러나 이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라는 게 재계의 인식이다. 노동계의 요구를 충족시키려면 기업은 20조6000억원(한국경제연구원)~26조7000억원(한국금융연구원)의 추가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양대노총은 "재계가 비정규직 문제에 적극 임해준다면 정규직의 양보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개별 사업장에서 정규직이 실제로 각종 기득권을 양보할 것인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노동부의 해법도 반대에 부딪혀 있다. 노동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상당수를 정규직화한다는 방침. 하반기에는 '파견제근로자보호법'을 개정하고, '기간제 단시간 근로자보호법'을 제정할 계획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정부가 파견업종을 늘리는 것에 반발하고 있고, 재계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대폭적인 정규직화가 민간 부문에 불러올 파장을 우려한다. 예산확보와 노동시장의 유연성 악화를 걱정하는 경제부처도 탐탁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선진국 실태와 해법=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한국에 '스페인식 노사모델'을 권고했다. 스페인 해법은 정규직이 퇴직금의 일부를 퇴직금을 못받는 비정규직에 돌리는 등 정규직의 양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비정규직을 많이 쓰는 기업에는 벌칙을, 정규직 채용을 많이 하는 기업에는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특징.

노사정위원회 이호근 박사는 "비정규직 관련 법들을 속히 처리하는 게 급선무"라며 "이제 대기업노조가 두자릿수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안된다. 또 재계는 정규직이 임금을 양보할 경우 이를 비정규직을 위해 사용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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