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관리 특감]에이즈 감염 87명 신원확인도 안돼

  • 입력 2004년 3월 28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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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이 28일 발표한 ‘혈액안전 관리실태’ 특감 결과는 정부의 부실한 혈액관리로 인해 국민의 의료 안전에 적신호가 켜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부, 허술한 혈액관리 실태 드러나=감사원은 지난해 시민단체인 ‘건강세상네트워크’로부터 대한적십자사 소속의 혈액원이 혈액관리법을 위반하면서 부적격 혈액을 수혈용이나 의약품 원료로 공급하고 있다는 제보를 접수하고 지난해 12월까지 대한적십자사 혈액사업본부와 혈액수혈연구원을 대상으로 특감에 착수했다.

특감 결과 대한적십자사 혈액사업본부와 16개 혈액원 및 혈액수혈연구원에서 헌혈을 받아서는 안 되는 ‘헌혈유보군’에 대한 등록관리 업무에 구멍이 뚫린 사실을 적발했다. 또 간염 양성반응을 보인 헌혈자로부터 채혈해 간염에 감염될 수 있는 부적격 혈액을 수혈하거나 의약품 원료로 출고한 사례도 밝혀냈다.

실제로 1999년 4월 1일부터 올 1월 7일까지 간염 양성판정을 받은 부적격 혈액 7만6677건이 수혈용과 의약품 원료로 출고됐고 이 중 9명의 수혈환자가 B형이나 C형 간염에 감염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에이즈 1차 양성판정을 받은 99명의 혈액이 유통된 것도 파문이 예상된다. 이들이 비록 2차 정밀검사에서는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지만 이들의 혈액 228건이 유통된 것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에이즈의 경우 보균기간 등을 감안하면 2차 정밀검사 결과만 믿고 완전히 마음을 놓기는 어렵다고 의료계 전문가들은 말한다.

1987년부터 2000년 6월 사이에 국립보건원이 확인한 에이즈 감염환자 199명의 신상이 잘못돼 있었던 것도 허술한 관리실태를 보여준다. 감사원은 이 중 115명은 ‘헌혈영구보유군’으로 등록은 돼 있지만 이름이 잘못 기재돼 있고, 84명은 아예 신원 확인이 불가능해 이들이 수혈을 할 경우 2차 감염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감사원의 지적사항이다. 그러나 감사원 특감 때까지는 이들의 헌혈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감사원측은 밝혔다.

▽업계 ‘예견된 결과’ 반응=관련 당국과 업계에서는 그동안 ‘심증은 갔지만, 물증만 없었다’며 충분히 예견돼 왔던 결과라는 반응을 보였다.

혈액관리 업무를 맡은 대한적십자사는 연간 200만∼250만건의 수혈용 혈액을 공급하면서 혈액 관련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국 16개 혈액원은 헌혈자 신상정보 관리용 대형 컴퓨터(서버)를 각자 따로 운영해 혈액원간의 정보교류는 사실상 없었다는 것이다.

전체 혈액 공급량의 70%가량을 차지하는 군부대 직장 등에서의 단체헌혈에서도 ‘헌혈이 야외에서 이뤄지는 데다가 조회 장비가 없다’는 이유로 헌혈자의 과거 병력에 대한 조회 절차는 아예 생략되기 일쑤였다.

감독당국인 보건복지부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복지부 내에선 공공보건관리과의 사무관과 주사 등 2명이 혈액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그나마 이들은 “다른 업무에 치여 혈액관리에 전념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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