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대책후 첫학기]<2>기로에 선 특목고

  • 입력 2004년 3월 5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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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씨(42·여·서울 서초구 잠원동)는 요즘 중학교 3학년생 딸의 진로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김씨는 치과의사가 되고 싶어 하는 딸을 외국어고에 보내 ‘의대 준비반’에서 공부시킬 계획이었다. 김씨 딸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특수목적고 준비 학원에서 하루에 4시간씩 공부해 왔다.

김씨는 “외국어고 학생은 어문계열, 과학고 학생은 이공계열 진학을 유도하겠다는 ‘2·17 사교육비 경감 대책’은 청천벽력”이라고 말했다.

▽특목고 가도 되나?=특목고 입시를 준비해 온 중학생과 학부모들은 “특목고에 가면 대학에 진학할 때 불리한 것 아니냐”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내 특목고와 특목고 전문학원에는 이 같은 문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서울 B중 3학년 윤모양은 “외국어고에 가서 법대 진학 준비를 할 작정이었는데 계속 특목고 입시를 준비해야할지 모르겠다”면서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부모 박모씨(44·여)는 “일단 아들을 학습 분위기가 좋은 외국어고에 보냈다가 2학년 때 일반 고교로 전학시킬 생각”이라고 말했다.

▽내신 불리 심해질까?=학생과 학부모의 이 같은 ‘방황’은 교육인적자원부가 8월 특목고 대책 최종안을 발표할 때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교육부 최종안의 기본 방침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교육부는 현재 중학교 3학년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2008학년도 대학 입시부터 학교생활기록부(내신)의 전형 비중을 높일 계획이다. 우수한 학생 집단인 특목고생은 같은 학력 수준이라도 일반고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내신에서 불리하다.

이 때문에 상대평가인 석차(등수)를 반영하는 대학에 지원하는 특목고생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절대평가인 평어(수우미양가)를 반영하는 대학에 진학하는 특목고생은 불리해질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교육부는 과학고생이 이공계열에, 외국어고생이 어문계열에 지원할 때는 대학이 내신을 반영하지 않고 특별전형 등으로 모집하도록 허용할 방침이다.

▽법대 상대 지망 외국어고생은?=외국어고생이 법대 상대 등 비(非)어문계열에 지원할 때 특별한 불이익을 받지는 않으나 교육과정상 비어문계열에 진학하려면 별도의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가 과학고는 과학 과목, 외국어고는 외국어 과목을 집중적으로 편성하도록 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필수 이수과목을 많이 지정한 대학에 진학할 때 외국어고나 과학고생은 불리해질 것”이라며 “특목고생은 설립 취지에 맞는 과목을 많이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과학고생이 의대에 진학할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많은 의과대가 과학고생이 주로 배우는 과목을 필수 이수과목으로 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특목고생의 대학 진학시 유불리는 대학의 내신 반영 방법과 필수과목 지정 여부에 따라 진폭이 클 것으로 보인다.

▽8월에 절충안 나올 수도=특목고는 교육부 방침에 반발하고 있다. 한 외국어고 관계자는 “농고 졸업생은 농대만 가라는 말이냐”면서 “학생들의 진로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발상”이라고 성토했다.

특목고가 집단으로 반발할 경우 교육부가 절충안을 마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제7차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골라 배우는 등 학생의 선택권을 크게 강조하고 있어 특목고 대책과 현재의 교육정책이 상충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불안한 특목고와 전문학원=“차라리 외국어고를 없애는 편이 낫겠습니다. 수시로 바뀌는 교육정책에 따라 이렇게 부침이 심해서야….”

한 외국어고 교감은 “학부모들의 잇따른 문의에 ‘8월에 구체적인 방안이 나올 때까지 일단 열심히 공부하면서 기다려 보라’는 대답밖에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 일산 신도시의 특목고 전문학원 김모 원장은 “특목고 전문학원은 이제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며 “학원끼리 연합해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과학고는 이번 대책을 반기고 있다. 서울 한성과학고 이순호 교감은 “과학 영재를 길러 우수한 이공계 인재로 키우겠다는 본래 목적을 살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반색했다.

▼8월 발표될 특목고 개편 방향은▼

교육인적자원부는 특수목적고가 명문대나 한의대 의대 등 이른바 인기 학과 진학을 위한 ‘징검다리’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특목고 입시가 사교육을 조장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교육부는 특목고의 입시와 운영 방식을 설립 취지에 맞게 크게 손질한다는 방침이어서 앞으로 특목고의 모습이 많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올해 중학교 2학년생이 고교에 진학하는 2006학년도부터 특목고는 국어 영어 수학 등 교과목 성적보다 해당 분야 특기와 소질이 뛰어난 학생을 우선 선발하게 된다. 특목고 학생들이 해당 분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대입 특별전형도 마련된다. 올 중학교 3년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2008학년도부터 특별전형이 시작될 예정이다.

교육부는 특목고가 교과 총이수 단위의 10%(19단위, 학기당 19시간)를 더 가르칠 수 있는 시간에 해당 분야 교과나 설립 취지에 맞는 교과만 개설하도록 할 계획이다. 외국어고에서 ‘의대 준비반’을 운영하는 등 설립 취지에서 크게 벗어난 교육과정을 운영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올 8월에 발표되는 구체적 운영 지침에 따라 2005학년도 신입생(현재 중학교 3학년생)에게는 새로운 지침이 적용된다. 특목고의 교육 과정을 제한하는 방안은 학교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제7차 교육과정의 취지에 어긋나 특목고를 ‘역차별’한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교육부는 또 2005학년도 입시부터 회화형 중심 교육을 위해 외국어고가 듣기평가에서 긴 문장을 들려주고 의미 해석을 요구하는 ‘독해형 평가’를 하지 못하도록 할 방침이다. 구술면접고사에서도 수학 과학 위주의 문제나 지필고사 형태의 문제를 출제하지 말도록 했다.

2006학년도부터는 부작용이 많은 각종 학력경시나 경연대회 성적에 대해 가산점을 주는 것이 폐지된다.

▼특별취재팀▼

홍성철 기자(팀장)

이헌진 이완배 손효림 길진균 조이영 정양환 유재동 전지원 기자(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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