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울산 노동자 분신자살파장 장기화 조짐

  • 입력 2004년 3월 5일 00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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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사내 하청업체에 다니던 근로자 박일수씨(50) 분신자살 사건이 발생한지 4일로 20일째를 맞았으나 아직 협상주체가 정해지지 않아 장기화되고 있다.

박씨가 분신자살한 것은 지난달 14일. 박씨는 유서에서 ‘나의 한 몸 불태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이 개선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올해 노동계의 핵심 쟁점으로 점화시키기 위해 즉각 ‘분신대책위원회’(위원장 이헌구 민주노총 울산 본부장)를 구성했다. 유족인 박씨의 딸(26)로부터 장례절차도 위임받았다.

대책위는 △현대중공업과 박씨가 근무했던 인터기업 대표의 공식사과 △현대중공업 사내 150여개 하청업체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실시 등 9개항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인터기업 측은 “숨진 박씨는 지난해 12월 퇴직한 사람”이라며 “작업 중 사고사가 아닌 퇴직 근로자의 자살이어서 협상에 나설 수 없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도 “박씨를 직접 고용했던 회사가 아니다”며 협상주체가 될 수 없다는 입장.

두 회사는 또 “유일한 유족인 딸의 의사를 확인하기 위한 면담을 대책위가 차단하고 있어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며 대책위에 책임을 떠넘겼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현중 노조가 중심이 된 대책위를 구성해 사태를 조기에 해결하자”고 제안했으나 대책위는 “회사 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현중 노조는 배제돼야 된다”며 거절했다.

대책위는 3일 오후 현대중공업 측과 만나 “현대중공업과 대책위, 동구청장이 포함된 중재단 등 제3자를 협상주체로 하자”고 제의했으나 회사 측은 “현중 노조도 협상주체에 포함돼야 한다”며 맞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울산 경실련과 YMCA 등으로 구성된 울산시민단체협의회는 최근 발표한 성명서에서 “사태의 조기해결을 위해 울산시가 중재자로 참여할 것”을 촉구했으나 시는 “당사자가 아니다”며 방관하고 있는 상태.

노동계는 이번 기회에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강경 입장이어서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4·15 총선에서 ‘원내 첫 진입’을 목표로 한 노동계가 총선에 힘을 결집시키기 위해 이번 사태를 의외로 쉽게 해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울산=정재락기자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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