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검찰 ‘국회 방탄막’ 사라지자 속전속결

  • 입력 2004년 1월 10일 07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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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비리에 연루된 16대 현역 의원 6명 전원이 구속됨으로써 정치권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검찰과 법원의 부패 척결 의지가 가시화돼 대선자금 비리, 대우건설 비리 등과 관련된 현역 의원들이 엄정하게 사법 처리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법원은 9일 임시국회가 끝나자마자 한꺼번에 청구된 사전구속영장을 모두 발부함으로써 검찰에 힘을 실어줬다. 서울지법은 “범죄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며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구속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문효남(文孝男)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은 영장을 청구하면서 “일반 부패사범에 비해 결코 혐의가 가볍지 않아 구속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밝혀 앞으로 정치권 부패에 적극적으로 칼을 대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에 따라 의원들이 ‘방탄 국회’로 신변의 안전을 도모하기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법부와 검찰의 합작에 의한 무혈 정치 혁명’이 시작됐다는 말이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을 정도다.

현역 의원 6명이 동시에 구속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13대 국회 시절인 1991년 2월 수서비리에 연루된 여야 의원 5명이 함께 구속된 것이 지금까지 최고 기록이었다. 지난해 말까지 16대 국회의 구속된 의원은 민주당 김방림(金芳林) 의원뿐이었으나 이제 7명으로 늘었다.

검찰은 당초 국회 결정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열린우리당 정대철(鄭大哲) 의원과 한나라당 최돈웅(崔燉雄) 의원 등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7명 가운데 혐의가 비교적 가벼운 2, 3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것을 검토해 왔다.

하지만 선별적인 불구속 처리가 형평성 시비를 낳을 수 있다고 판단했으며 ‘방탄 국회’ 등에 대한 비판 여론을 감안해 ‘원칙대로’ 처리하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수사팀은 또 비리 혐의가 분명한 현역 의원들을 가볍게 처벌할 경우 구속된 손길승(孫吉丞) SK그룹 회장 등 불법 대선자금 관련자들과 사법처리의 형평성을 맞출 수 없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 같은 판단에 따라 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7명과 한나라당 김영일(金榮馹) 의원 등 8명 전원에 대해 국회 회기가 끝나자마자 전격적으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해 신병을 확보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검찰은 특히 자진 출두를 유도해 구인장을 집행하지 않는 방식으로 고위 공직자를 예우해왔으나 이번에는 정대철 의원을 구인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검찰은 수사에 비협조적이었고 혐의가 많은 정 의원에게 이른바 ‘괘씸죄’를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들이 잇따라 사정(司正)의 칼바람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대검은 현역 의원에 대한 무더기 형사처벌 이후 곧바로 대선자금을 유용한 의원들을 수사의 표적으로 삼을 방침이다. 서울지검도 대우건설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는 등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주요 대기업들이 노무현(盧武鉉) 후보 캠프에 제공한 대선자금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데다 이번에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된 8명의 의원 가운데 5명이 한나라당 소속이라는 점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총선을 앞둔 시점이어서 ‘표적 사정’이나 ‘인위적 정계개편’이라는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법조인은 “현 정부나 김대중(金大中) 정부 집권 당시 각종 이권에 개입한 여당 또는 구여권 정치인을 처벌하지 않고 대선 패자에 대한 가혹한 수사가 벌어진다면 형평성 논란이 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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