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 전국 확산]“곳곳 매몰 구덩이… 온동네 쑥대밭”

  • 입력 2003년 12월 21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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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한 오리 사육 농가에서 의사 조류독감이 발생한 전남 나주시 산포면 일대는 방역작업으로 부산했다. 지나가는 차량은 소독을 한 뒤에 이 지역을 지나갈 수 있다. -나주=연합
21일 한 오리 사육 농가에서 의사 조류독감이 발생한 전남 나주시 산포면 일대는 방역작업으로 부산했다. 지나가는 차량은 소독을 한 뒤에 이 지역을 지나갈 수 있다. -나주=연합
《전국으로 조류독감 피해 지역이 확산되자 사육 농가들은 닭과 오리의 집단 몰살과 수요 급감에 따른 연쇄 도산이란 ‘이중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은 당국의 미온적인 초동대처가 사태를 악화시켰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급속확산 위기=“난데없는 조류독감 때문에 동네 전체가 쑥대밭이 된 것 같아요.”

21일 오전 11시경 충남 천안시 북면 운룡리 주민 60여명이 조류독감에 대비해 예방접종을 받는 것을 지켜보던 천안시 북면사무소 서종원씨(34)는 이렇게 말했다.

북면 H오리농장의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인근에서 도살 처분된 오리가 수십마리씩 포대에 넣어져 구덩이에 던져지고 있었다. 천안시의 한 공무원은 “구덩이를 파고 오리를 죽여 포대에 넣어 묻는 작업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 직산읍 판정리와 석곡리 오리농장 2곳도 잠정 폐쇄됐다. 이 마을은 조류독감이 첫 발생한 충북 음성군 삼성면 청룡리에서 24km 정도 떨어져 있는 산골이다. 하지만 이곳 농장에서 부화된 오리가 전남 등 다른 지역으로 유통됐다.

천안시 안동욱 축산과장은 “오리가 다른 지역으로 팔려나갔기 때문에 조류독감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조류독감이 처음 발생한 음성군 삼성면 청룡리에서 3.5∼4km 떨어진 음성군 대소면 삼정리와 미곡리에서도 조류독감 의심신고가 접수되자 주민들은 망연자실하고 있다.

이 일대에서는 육군 37사단 군 병력 200여명과 공무원 50여명이 수십만마리의 닭과 오리를 매립하고 있다.

▽영호남도 위험=조류독감 감염이 의심돼 마을 입구에 방역통제소가 설치되고 곳곳에 생석회가 뿌려진 전남 나주시 산포면은 21일 하루종일 긴장감이 흘렀다.

20일 면사무소에 조류독감이 의심된다며 신고한 매성마을 민모씨(58)는 “4, 5일 경기 여주, 충남 천안의 오리부화장에서 1만4900여마리를 가져왔는데 16일부터 매일 오리 100여마리가 목을 뒤로 젖히거나 날개를 펴고 죽었다”고 말했다.

매성마을에서 3km 떨어진 산포면 덕례리 오리농가들도 조류독감 여파가 미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경북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양계농장에서도 닭이 갑자기 폐사했다. 이 농장주인 이모씨(68)가 지난달 중순 충북 음성군 감곡면의 한 농장에서 병아리를 들여왔다.

▽연쇄도산 우려=국내 오리가공식품 시장 점유율이 55%인 ㈜화인코리아(전남 나주시 금천면)가 경영난 등으로 19일 최종 부도 처리됐다. 이 회사에 오리와 닭을 납품해 온 전국 250여 농가는 밀린 사육대금을 받지 못한 데다 오리 소비가 급감해 연쇄 피해가 우려된다.

조류독감의 여파로 닭고기와 오리고기를 취급하는 음식점들은 ‘개점휴업’ 상태다.

충남 천안시 병천면에서 오리고기 음식점을 운영하는 류모씨(56)는 “손님의 80%가 줄었다”고 말했다.

한편 충북에서 처음 발생한 조류독감이 충남과 전남, 경북 등 전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서 초기대응이 미흡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충북도와 음성군에 따르면 조류독감이 처음 발생한 것은 5, 6일경이지만 해당 농가는 10일에야 신고를 했고 음성군은 12일에야 방역대책 상황실을 설치했다. 게다가 조류독감이 인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닭과 오리에 대한 도살 및 매립작업이 며칠간 차질을 빚었다.

천안=이기진기자 doyoce@donga.com

음성=장기우기자 straw825@donga.com

나주=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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