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현장]혈세 낭비하는 청소년 공부방

  • 입력 2003년 9월 22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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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10시경 경기 성남시 중원구 중동 청소년공부방에서 상근 자원봉사자가 열람실을 정리하고 있다. 이날 공부방을 찾은 학생 중 열람실 이용자는 단 1명도 없었다. -성남=이재명기자
16일 오후 10시경 경기 성남시 중원구 중동 청소년공부방에서 상근 자원봉사자가 열람실을 정리하고 있다. 이날 공부방을 찾은 학생 중 열람실 이용자는 단 1명도 없었다. -성남=이재명기자
16일 오후 9시 반 경기 성남시 중원구 중동 청소년공부방. 이 곳에서 일하는 배모씨(60)가 공부방의 문을 닫기 위해 열람실과 인터넷 교실을 정리하고 있었다.

인터넷 게임에 푹 빠져 있던 초등학생 2명은 배씨가 정리를 시작하자 슬그머니 공부방을 빠져나갔다.

배씨는 “저 학생들은 점심 때 와서 지금까지 게임만 했다”며 “오락 그만하고 공부하라고 하면 모두 가 버리니 공부방이 아니라 게임방”이라고 말했다.

이날 중동 청소년공부방을 이용한 학생은 34명. 그러나 이 중 열람실을 이용한 학생은 단 1명도 없었다. 모두 인터넷 교실에서 무료로 게임이나 채팅을 즐긴 것이다.

저소득층 자녀에게 학습 공간을 제공하고 이들의 학습 지도를 위해 1991년부터 지방자치단체마다 청소년공부방을 설치했으나 취지에 맞게 잘 운영되지 않고 있다.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청소년공부방은 경기도 26개소 등 전국에 339개소가 있다. 이들 공부방에는 올해 16억9500만원이 지원됐다.

경기도는 26개소 외에 도비와 시비 18억원을 들여 140개소를 자체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지자체 예산으로 운영되는 것까지 합하면 전국적으로 청소년공부방은 1000여 곳에 달한다.

▽공부방에 학생이 없다=경기도가 올해 상반기 청소년공부방의 이용 실적을 조사한 결과 1개소당 하루 평균 이용 학생은 30명 정도였다. 그러나 실제 열람실을 이용하는 학생은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

시설이 낡은 데다 학습지도도 받을 수 없어 청소년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는 것이다.

또 대부분의 상근자가 고령인 탓에 학습지도를 받는다는 것은 애초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날 성남시 중원구 은행2동 공부방 앞에서 만난 황권병군(16)은 “오후 11시까지 개방한다는 말과는 달리 사람이 없으면 바로 문을 닫는다”며 “주변에서 떠들어도 제재하는 사람이 없어 잘 가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이날 이 공부방은 오후 8시에 문을 닫았다.

▽“선택과 집중의 묘 살려야”=이처럼 공부방들이 청소년에게서 외면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자체들은 공부방 수를 계속 늘리고 있다. 반면 정부 예산은 매년 동결돼 1곳당 지원 예산이 계속 줄고 있다.

자연히 대부분의 예산이 인건비와 수용비(需用費)로 쓰인다. 전체 예산의 20%로 책정돼 있는 홍보비를 제대로 사용하는 공부방은 거의 없다. 투자 부족→청소년의 외면→부실 운영의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예산만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공부방의 활성화를 위해 인터넷과 학습프로그램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며 “그러나 내년 예산이 증액되지 않아 당장 추진하기는 힘들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안승문(安承文) 정책실장은 “대부분 위탁 운영되는 공부방을 늘리기보다는 그 예산을 학교 도서관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며 “농촌지역처럼 공부방이 반드시 필요한 곳엔 지원금을 늘려 체계적인 학습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남=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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