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심우영/사라진 '가정교육'

  • 입력 2003년 5월 22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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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온화한 향기에 걸맞게 달력 속의 5월은 가정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게 하는 기념일로 가득하다. 하지만 인성 교육의 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오던 우리의 가정교육이 갈수록 실종되어 가는 현실을 생각하면 ‘가정의 달’에 대한 소회(所懷)가 그렇게 따듯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다음의 이야기는 이런 문제들과 관련해 새삼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젊은 주부가 아이를 데리고 가구점에 쇼핑을 갔다. 주부가 가구를 둘러보는 사이에 아이가 진열된 가구 위를 마구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자 가구점 주인이 주의를 주었다. 그러자 그 젊은 주부는 “그까짓 가구 내가 사면 되지 왜 아이 기를 죽이느냐”고 했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아이를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게 키워야 한다는 비뚤어진 자식사랑이 빚어낸 우리 모두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초래된 데에는 청소년들의 인성교육을 포함해 전인교육을 책임진 교육당국이나 관련 단체에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측면이 강하다. 일전에 한국국학진흥원의 국학교육전시실에 들른 젊은 주부들에게 가정교육에 대한 생각을 물어 본 적이 있다. 그 결과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막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에 따라 국학진흥원에서는 젊은 어머니들에게 참고가 될 수 있도록 오늘에도 의미 있는 선조들의 가정교육 전통과 외국의 모범 사례들을 엮어 가정교육 안내서를 펴내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교육당국이나 단체들은 우리의 우수한 가정교육 전통을 되살리기 위해 가정교육의 당위성에 대한 강조 못지않게 이런 실질적인 부분에도 신경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가정이 ‘사람’을 키우는 곳이 아니라 경쟁에 살아남기 위한 ‘전사(戰士)’ 또는 온실 속의 왕자와 공주를 키우는 장소로 전락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없다. 거기에는 그 공동체를 지탱하는 데 필수적인 건전한 윤리의식이 뿌리내릴 토양이 더 이상 축적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정의 달’이 연례행사가 되기보다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중지를 모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심우영 한국국학진흥원장·전 총무처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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