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서지문/옛날 反共교육, 오늘 反美교육

  • 입력 2003년 5월 22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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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때로 기억하는데 사회 교과서에 ‘밤에 라디오를 듣는 사람, 색안경을 쓴 사람’ 등 간첩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보면 신고하라는 글이 있었다. 그 때문에 어른이 된 후에도 오랫동안 선글라스를 쓴 사람에 대한 꺼림칙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또다른 세계관 왜곡 우려 ▼

전교조 교사들이 반전교육을 한다는 말을 들으니 우리가 받았던 반공교육의 정확한 대칭 상황이 왔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이 악이라는 사실이야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지만, 10대 청소년들에게 전쟁의 참혹한 광경을 보여주면서 ‘이런 전쟁을 일으키는 미국은 악마’라고 가르친다면 차세대는 우리가 공산주의에 대해 가졌던 편견을 대상만 바꾸어 갖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장차 미국과의 관계악화로 인해 우리나라에 많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야기될 것이다.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우리의 차세대가 왜곡된 역사관, 세계관의 포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무리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비난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전쟁은 무조건 나쁘다고 가르친다면 학생들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악성국가도 계속 달래고 어루만져야 한다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런 편파적 사고방식의 주입은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역사와 분리해서 전쟁을 가르칠 수는 없고 가르쳐서도 안 된다. 전쟁은 절대 악이지만, 전쟁을 피하려고 히틀러의 라인란트 진군을 눈감아주고, 수데텐란트 침략을 눈감아주고,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의 합병도 눈감아주고 하다가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을 피하지 못하고 히틀러에 의해 2000만명을 희생시킨 영국과 프랑스 소련의 행위가 비겁했다는 것도 가르쳐야 할 것이다. 나치 독일이 무서워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다가 결국 나라를 통째로 바친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의 용렬함도 인식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자기방어적 선제공격이라고 인정하기는 어렵지만, 사담 후세인이 민중의 압제자이고 국제사회의 무법자였던 것은 분명하다.

6·25전쟁 이후의 편향적 반공교육에 대한 반발과 월북자 가족에 대한 감시와 연좌제,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 때문에 우리의 젊은 세대는 공산주의에 동정적이 되고 군사정권의 후원자로 보인 미국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되었다. 6·25전쟁을 몸소 겪은 세대가 아무리 공산주의의 위험을 경고해도 젊은 세대는 마음을 닫고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제는 ‘반공’ 대신 ‘반미’가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반공 이데올로기에 앞장섰던 방송들이 북한을 찬양 대변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6·25전쟁에 대해 북한에 면죄부를 주려고 하고, 남한을 존망의 위기에서 구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성격이상자로 인식시키려 한다. 상황이 이쯤 되고 보니 젊은이들이 반미 이데올로기에 반발하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을 악의 화신으로 보도록 교육받은 젊은 세대가 직접 미국을 겪어보고 국제관계의 다면적 성격을 알게 되면 자신들이 받은 교육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될 것이다. 북한체제가 붕괴되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잔인한 동족학살과 민중착취가 밝혀지고 그로 인해 피폐한 북한의 복구비용을 남한이 감당하게 될 때 젊은 세대는 반사적인 이념 선회를 하게 될 것이다.

일부 급진적 교사들의 반미 이데올로기 주입은 젊은 세대의 역사관, 인간관, 세계관을 왜곡시킬 뿐 아니라 교사들의 목표인 민족적 자존심 회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에 대한 증오가 군사독재를 인내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부끄러움을 상쇄시켜 주지는 못한다. 또 미국의 대한(對韓)정책이 제국주의적 의도에서 나왔다 해도 미국에 진 부채는 남는다. 그리고 정부간에 갈등이 있다고 해서 한 세기 이상 계속된 수많은 민간인의 봉사와 도움마저 부인하고 짓밟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편파사고 주입은 교육 아닌데 ▼

역사의 교훈은 ‘전쟁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단순한 것이 아니다. 또 약소국의 횡포는 무조건 용서하고 감싸면서 강대국에는 절대적인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도 공정치 못하다. 차세대 교육을 담당한 사람은 자신의 교육 목표가 역사에 대한 폭넓은 소양과 인간 심성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의 배양인지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서지문 객원 논설위원·고려대 교수 jimoon@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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