加 로스킹 교수 "한국어교수 1호는 러人 포드스타빈"

  • 입력 2003년 5월 20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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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한국어 교수는 ‘살아있는 한국어 교육’을 추구한 러시아인 그리고리 블라디미로비치 포드스타빈(1875∼1924)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한국어학과 교수 겸 고려대 BK21 한국학교육연구 연구교수 로스 킹은 16일 서울대 국어교육학과 초청강연에서 이 같은 사실을 국내 최초로 공개했다.

포드스타빈은 1898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동방언어학과를 졸업하고 1900년부터 블라디보스토크 동양어대에서 22년간 한국어 교수로 있었다. 1920년 이 대학이 극동대학(極東大學)으로 확장된 후 초대 총장을 지냈다. 1922년에는 볼셰비키를 피해 조선으로 망명했다가 1923년 하얼빈(哈爾濱)에 정착했고 1년 뒤 사망했다.

포드스타빈 교수가 만든 한국어 교재 ‘초학언문본’(1901)의 표지.-자료제공 로스 킹

포드스타빈은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학습 과정과 교재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한국어 교육을 시작했다. 그가 개발한 실용주의적 교수법은 ‘살아있는 언어를 구사하는 인재 양성’을 내건 동양어대의 설립 의도와도 통했다.

그는 조선을 5차례 방문해 사회 변화상을 살피고 고전 신소설 신문 잡지를 모아 교육과정에 반영했다. 조선에서 국한문혼용체 사용 빈도가 높아지자 이 같은 점을 교재에 반영했고, 러일전쟁(1904∼1905) 이후 양산된 일본인 학자들의 논문과 교재 등을 들여와 교재 개발에 참고했다.

특히 구어체를 한국어 교육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그는 고어(古語)와 문어체 위주였던 기존의 외국어 학습 방식을 과감히 탈피했다. 학생들이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 교재에는 일상 대화와 명성황후 시해사건 같은 역사 이야기 등이 들어 있고, ‘땅 짚고 헤엄치기’ 등이 수록된 속담집, 풍자문학집, 농담집도 제작됐다. 학교 방침에 따라 정치 경제 문화 지리 서예 과목도 개설됐다.

포드스타빈의 자료에는 100년 전 개화기 한국어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어 국어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나, 현재 많은 자료의 행방이 묘연하거나 스탈린 치하에서 불타 없어진 상태다.

킹 교수는 1984년 하버드대 대학원 재학 중 학교 도서관에서 포드스타빈 관련 자료를 처음 발견했다. 15년 전부터 러시아 중국 등지에서 자료를 모으며 포드스타빈을 본격적으로 연구해 왔으며 앞으로 연구 성과를 정리해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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