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공기 파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

  • 입력 2003년 4월 22일 15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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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사기 아냐 ?"

2001년 5월 제주도 보건환경연구원이 한라산 '공기'를 캔에 담아 판다고 밝혔을 때, 발표장에는 작은 소란이 일었다. 한없이 있어 누구도 값을 치르지 않는 '자유재(自由財)' 중에서도 대명사인 '공기'를 누가 사겠냐는 것이다.

꼭 2년이 흐른 현재, 이 엉뚱한 사업은 황금알을 꿈꿀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 'CJ 내추럴 에어'라는 이름으로 지난달에만 7만 캔이 팔렸다. 황사가 잦은 이달 들어서는 말 그대로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다. 누가 4000원이나 주고 기껏해야 3∼5분 숨쉴 분량의 공기를 사겠느냐는 의구심은 이제 말끔히 사라졌다.

17일 제주도 한라산 국립공원 내 천아오름 계곡의 700고지에서 제주도 보건환경연구원 대기보전과 직원들을 만났다. 김영주 과장을 비롯해 직원 6명이 지난해 10월부터 이 곳에서 공기를 채취해 CJ에 팔고 있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들'이다.

엉뚱한 발상과 도전= "공기 산업이 뜬다던데." 2001년 4월 보건환경연구원 내에서는 이런 의견이 분분했다.

천아오름 계곡은 아황산가스와 이산화탄소가 검출되지 않은 무공해 공기로 꽉 차 있다. 어떤 검사를 해봐도 하와이나 스위스 알프스산맥 등 세계적 청정지역에 비길 만하게 공기가 깨끗하다. 연구원들은 모험을 감행하기로 했다. 다행히 도청에서도 흔쾌히 손을 들어줬다.

"우여곡절 끝에 3개월만에 공기를 10배 압축해 캔에 담았죠."

이 해 7월 연구원들은 시제품을 가지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대기오염이 심각한 서울의 교통경찰과 지하상가 상인에게 '테스트'를 해보기 위해서였다.

반응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시원하다"는 호평 속에 '심심한 맛'이 단점으로 지적됐다. 무색무취한 공기를 맛있게 만들 '향'이 필요했다.

김영주 과장은 "제주도만의 향, 산림 속을 거니는 분위기의 향을 찾기 위해 미역 향, 밀감 향, 유채꽃 향 등 많은 향을 가미해 봤다"고 말했다.

고심 속에 택한 게 살아 있을 때나 죽어서 고목이 돼도 나무 모양이 멋져 '살아서 100년, 죽어서 100년'이라고 불리는 구상나무의 향이었다.

이 나무는 세계적으로 제주도와 지리산, 덕유산 일부에서만 자생하는 데다 한라산 정상 부근 800만평 규모로 가장 크게 자생하고 있기 때문. 무엇보다 삼림욕 성분으로 항균(抗菌)성 물질인 '피톤치드'가 소나무보다 3∼4배 많은 향이 나온다.

"아마 구상나무 향을 추출한 것은 우리 뿐일 거예요. 게다가 2002년 3월 입과 코를 동시에 대고 공기를 마실 수 있도록 만든 마우스 캡으로 특허도 받았죠."

합작 파트너도 물색했다. 지방자치단체 힘만으로는 전국에 이 상품을 파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 지난해 6월 CJ에 합작 계약을 맺고 10월 CJ의 도움을 받아 멋진 디자인의 새 제품을 본격적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시류(時流)에 맞아= "대구지하철 참사 이후 찾는 사람이 크게 늘었어요. 아마 유독가스 속에서도 이 것만 가지면 숨을 2,3분 정도는 더 유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확산되면서겠죠."

환자, 수험생들, 지하 등 공기가 탁한 곳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을 주 타깃으로 삼았지만 엉겁결에 구급 장비로까지 여겨지기 시작하고 있다.

제주도는 실제 유독가스 속에 이 캔이 구급 장비로 작동할 수 있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 최근 서귀포시 공무원을 상대로 진짜 최루가스를 써서 실험을 하기까지 했다. 적어도 3분 가량은 방독면 대용으로 쓸 수 있다고 결론을 낸 상태.

김과장은 "응급 상황에서 이 정도 시간이면 목숨을 좌우한다"면서 "7월에 150배로 공기를 압축하고 용기의 크기는 훨씬 줄인 제품이 나온다"고 말했다. 단점이던 뿌리는 모기약 크기의 캔을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로 줄였다는 소리다.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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