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측근 2억5000만원 수수]검찰 수사은폐 4가지 의혹

  • 입력 2003년 4월 6일 19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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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종금의 대주주인 김호준(金浩準) 전 보성그룹 회장측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측근으로 불리는 안희정(安熙正)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과 염동연(廉東淵) 민주당 인사위원에게 돈을 줬다고 공개함에 따라 검찰이 그동안 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수사를 했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6월 공적자금 비리 수사의 하나로 보성그룹의 분식회계와 사기대출 사건을 수사하면서 보성계열사인 L사 자금이사 최모씨로부터 “김 전 회장의 지시로 안씨와 염씨에게 각각 2억원과 5000만원을 전달했다”는 진술을 받았다.

검찰은 지금까지 보성그룹 자금담당 부회장인 유모씨가 해외로 도피하고 김 전 회장이 돈을 준 사실을 부인했다는 이유로 안 부소장과 염 위원의 금품수수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최씨의 말만 믿고 수사를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이 검찰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김 전 회장측의 공개로 검찰이 최씨의 진술 외에도 객관적 물증을 확보하고도 수사를 지연한 사실이 명백해졌다. 검찰 수사에 대한 의혹은 대개 다음의 4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물증 무시=지난해 4월 최씨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결과 ‘2억원 받았음’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안 부소장의 명함을 검찰이 이미 확보했다는 것이 김 전 회장측의 주장이다.

이 명함은 최씨가 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안 부소장에게서 받았다고 지난해 6월 진술했다. 이 같은 점으로 미뤄볼 때 금품 전달사실을 부인하는 김 전 회장을 추궁할 수 있는 결정적 물증이었으나 검찰은 지난해 7월 내사를 중단했다.

검찰이 구체적인 진술을 받고도 공적자금 2조998억원이 투입된 기업의 회장이 전달한 돈에 대해 사실관계와 비리 의혹을 더 확인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관된 진술 무시=특히 검찰은 최씨가 10차례 가까운 조사에서 일관되게 돈을 전달한 사실을 주장했는데도 최씨의 진술에 신빙성을 두지 않은 것도 의문이다. 당시 수사팀 내부에서는 이런 문제점 때문에 이견까지 노출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이에 대해 해명할 수 있는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다. 검찰은 지난해 7월과 11월 공적자금 중간 수사 발표에서도 안 부소장과 염 위원이 돈 받은 의혹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검찰은 대선을 거치며 올해까지 금품 수수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수사를 계속 끌고 있어 정치권의 외압 등 ‘말 못할 속사정’이 있지 않느냐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수사 중단 시기의 의혹=이와 관련, 수사팀이 ‘2억5000만원’ 관련 진술을 받았다는 지난해 6월24일이 노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4월27일)된 지 두 달 정도밖에 안 된 시점이라는 것과 무관한지도 의문이다. 검찰 내부에서도 “수사 중단을 결정하는 데 증거 부족 등 다른 요인도 있었겠지만 대통령 후보의 측근에 대한 수사가 대선에 미칠 영향도 고려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일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6월28일 나라종금 분식회계 및 사기대출 사건을 기소하면서 김 전 회장이 관리한 개인자금 입출금 명세서를 뺀 수사기록을 법원에 제출했고 이어 안 부소장과 염 위원의 뇌물수수 의혹에 대한 수사도 지난해 7월경 중단했다.

▽수사재개 시점=또 이번 수사 재개가 지난달 17일 노 대통령의 “정치적 고려 없는 수사” 지시 이후에 진행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만약 검찰 자체 판단에 따라 수사를 재개한 것이라면 지난해 수사 중단 판단은 잘못된 것이라고 검찰이 스스로 시인하는 셈이다. 검찰은 결국 지난해 수사가 은폐 또는 ‘봐주기’ 수사였는지에 대해 합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스스로 해명해야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나라종금 사건이란▼

나라종금 로비 의혹 사건은 2조900억원대의 공적자금 투입을 유발하고 퇴출된 나라종금의 대주주 김호준(金浩準) 전 보성그룹 회장 등이 지난해 6월28일 나라종금을 통해 2995억원 상당을 보성그룹에 불법 대출한 혐의로 기소되면서 불거졌다.

수사과정에서 김 전 회장이 골드뱅크 주식 투자 등으로 모은 개인 자금 230억원과 나라종금이 보성그룹 계열사에 대출한 30억원 중 10억원이 돈세탁된 뒤 정관계 인사들에게 각종 로비 자금으로 뿌려진 혐의가 추가로 드러난 것. 원래 공적자금비리 수사로 시작한 사건에서 정관계 로비의혹 사건이 파생된 것이다.

대검 공적자금비리합동단속반은 지난해 6월 김 전 회장의 자금관리인이자 보성그룹 계열사인 L사의 전 이사인 최모씨로부터 안희정(安熙正)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에게 2억원, 염동연(廉東淵) 민주당 인사위원에게 5000만원을 전달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이 돈은 김 전 회장의 개인 자금 230억원에서 빠져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김 전 회장의 개인 자금이 여당 인사인 H, P 의원 등에게 전달됐다는 의혹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이와 별도로 김 전 회장은 2000년 1월 나라종금에서 대출받은 자금 30억원 가운데 10억원을 세탁해 그중 일부를 정 관계 인사들에게 전달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검찰조사 결과 10억원 중 5억원은 안상태(安相泰) 전 나라종금 대표 이사에게 ‘스카우트 비용’ 명목으로 전달되고, 4억여원은 김 전 회장의 개인채무를 갚는 데 이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전 서울시 간부 K씨가 받았다는 5000만원과 전 사정총수 K씨가 받은 1000만원 그리고 전 정보기관 고위 간부 K씨가 받은 280만원의 출처도 세탁된 자금 10억원이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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